누구도 제 색깔을 잃지 않고 서로 어깨를 주무르는
메뉴 이름 하나가
내 얼굴에 비스듬히 미소를 찔러 넣었다
'깻잎오리주물럭'
엉뚱하게도 나는
삼삼오오 깻잎들이 모여
하얀 오리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광경을 떠올렸다
- 시원하시지요?
- 오냐.
그들 위로 하늘은 더없이 파랗고 햇살은 또 희게 눈부시리라-
식판 위에서 깻잎도 오리도
색을 잃은 채 시뻘건 기름 범벅으로 덩어리져 있었다
수저로 그 덩어리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현실은 이런 것이리라
아니, 늘 이렇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나는 다시 어리석은 생각을 떠올린다
이 세상 어딘가에, 꼭 동화책의 어처구니없는 삽화처럼
깻잎들이 삼삼오오 모여
지친 오리의 어깨를 주무르고
나도 그 옆에 비스듬히 기대고 앉는다
깻잎이 손이 아프다 하면 내가 대신 안마를 한다
- 시원하시지요?
- 오냐.
그리하여 어느새인가 나는 깻잎과 오리와 하늘과 햇살 그 누구 하나 제 색깔을 잃지 않은 그런 공간이 있다고 믿게 된다 헌 책방 구석진 어딘가 절판된 동화책의 페이지 속에라도 그런 세상은 있는 것이다 삼삼오오 서로 모여서 뭉친 어깨를 주무르고 또 주물러주다가 아직 오지 않은 한 아무개의 이야기도 좀 하다 갈갈갈 웃고 마는 그런 세상이 있다 믿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