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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엽서시 Apr 22. 2022

앵화설(櫻花說)

벚꽃이 피고 짐에 대해 문답하다

  예로부터 중국 사람들이 이르기를,

 “고려(高麗)는 산과 물이 맑고, 고려 사람들은 산과 물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청명(淸明)과 곡우(穀雨) 사이에 싹이 돋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를 밟으며 풍요를 비는 답청(踏靑)의 풍속이 있었는데, 이는 지금도 이어져 봄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나들이를 다닌다.

 옛사람들은 매실나무의 꽃인 매화(梅花)와 참꽃* 구경을 즐겼고, 복사꽃이라고도 부르는 복숭아꽃(桃花:도화) 보기를 즐겼으나, 오늘날 사람들은 벚나무의 꽃 구경을 즐긴다. 벚나무는 한자로 ‘櫻(앵)’이라 하는데, 이는 앵두(櫻桃)나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벚꽃의 꽃잎은 새끼손가락만 하고, 꽃잎 다섯이 모여 하나의 꽃송이를 이룬다. 그 색은 흰빛이 강하나 붉은 기운도 서리어 있어, 멀리서 보면 흰 물감을 칠한 것 같기도, 분홍색 물감을 칠한 것 같기도 하다. 꽃이 질 때가 되면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데, 누구는 이를 두고 봄에 내리는 눈과 같다고도 하고, 누구는 눈이 내리는 것보다 더 나은 풍경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벚꽃이 피었을 때는 사람들이 떨어진 벚꽃을 주워들기도 하고, 그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 자리를 펴기도 하며 즐기기에 바쁘지만, 벚꽃이 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그 전의 꽃나무를 뽑아버리기라도 한 듯, 나무를 대하는 모습이 데면데면하다. 언제 한 번은 내가 이를 두고, 벚나무 앞에서 말하기를,

 “슬프다, 벚나무여. 가엾다, 벚나무여. 그대가 꽃을 내면 웃고 좋아하며 그대를 추어올리던 이들이 이제 그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고 하였으나, 오늘날 사람들은 달지 않으면 곧바로 뱉고야 마니, 꽃이 피지 않은 그대를 대함도 이와 같다. 사우당(四友堂)*은 옛 신하 중에 권신(權臣)으로, 세조의 오른팔로 그 위세가 대단하여 명나라의 사신도 그의 정자에 불러 연회를 열 정도였다. 그러나 성종에 이르러 그 권세가 약해지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는데, 늘 대문 앞에 나와 텅 빈 문 앞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마주하는 것은 이렇게 괴로운 법이니, 옛 제(齊)나라의 맹상군조차 풍환(馮驩)에게 저를 버리고 간 식객(食客)들을 두고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 내 앞에서 웃는 낯으로 머리를 조아리면, 침을 뱉고 욕을 한 뒤에 쫓아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벚나무여, 그대는 매 년마다 그대를 대하는 사람들의 낯빛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도, 침을 뱉지도, 욕을 하지도, 쫓아내지도 못하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닐 수 있으랴.”

 하였다. 그날 밤, 꿈 속에서 벚나무의 혼령이 나타나 내게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어리석고 우습다. 저를 대하는 사람의 낯빛이 변하는 것을 보고 슬퍼하며 화를 내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나는 나무요, 나무는 나무의 일을 할 뿐이지, 사람의 일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나무에게 있어 꽃을 내는 일은 잎을 내는 일이나 가지를 내는 일과 똑같으니,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을 가를 수 없다. 사람들의 낯빛이 변하는 것은 나에게 사람의 일이요, 내 관심 밖의 일이니, 그대가 나를 걱정하는 것은, 뱀에게 신발을 걱정해주는 일과 같다. 그대가 나를 걱정한 것은 고마우나, 나에게는 그대의 걱정도 사람의 일일 뿐이다.”

 하고 사라졌다.

 사람의 눈으로 사람의 일을 보아 스스로 걱정을 만들어냈으니 기우(杞憂)*다. 나의 어리석음을 경계하고자 짧은 글을 적어 남긴다.     


임인년 적다.      


*참꽃: 진달래를 이름.

*사우당(四友堂): 한명회의 호.

*기우(杞憂): 기나라 사람의 걱정이란 뜻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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