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전, 난 항상 아이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나, 장난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곤 한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여자)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간지럼을 태우며 깔깔거렸다. 한참을 놀다 슬슬 잠들기 위해 의도적 침묵을 실행하는 찰나, 아이는 내게 물었다.
아빠,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뚜둥.
나도 정말 궁금하다.
도대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이는 재차 물었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죽는 건 뭔지
죽으면 다 없어지는 건지
그럼 나는 왜 사는 건지
죽기 싫은데 어떡하는지
'뇌 업로드'를 해줄 수 있는지
근데 '뇌 업로드'를 하면
살아있는 것과 똑같은 건지
똥도 싸고, 게임도 하고,
아빠를 만질 수도 있는 건지
......
미친 듯이 몰아치는 질문의 향연. 아이는 매우 다급해 보였다. 난 답을 내어주거나, 촌철살인의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말 모르겠다. 나도 궁금하다.
아빠도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약간의 고민 후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사는 게 없다면 죽는 게 없고, 죽는 게 있기 에 지금 살아있는 거라고.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생각하고, 웃고, 떠들 수 있는 이유가 죽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삶과 죽음은 같은 거라고.
아이는 뭔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곤 죽는 게 무섭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몸을 떨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입술은 말랐고, 숨이 가빠졌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뛰는 심장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아이는 토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물을 한 모금 마셔봐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잠을 자던 아내가 나왔다. 왜 그래, 아이가 체했어,라고 물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죽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런다고 말했다. 아내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체한건지 다시 물었다. 아이는 그런 엄마에게 제발 좀 조용히 하라고 했다.
아이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갑자기 다가온 듯했다. '죽음'이라는 괴물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자신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 '죽음'이 큰 입을 벌려 자신을 잘근잘근 씹을지도 모른다. 꿀꺽 삼키더라도 아무도 없는 암흑의 공간에 내동댕이 쳐진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난 누구인지, 지금 뛰고 있는 심장은 진짜 뛰는 건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게 손인지, 발인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도 그랬다. 중학교 2학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왜 사는 건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난 뭔지. 이런 질문이 거듭되면서 무섭고 두려워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계속 눈물이 났다.
이 감정을 그대로 아이가 느낀 듯했다. 양상은 달랐지만 그랬다. 내가 15살에 했던 질문과 그로 인해 느꼈던 감정을 아이는 고작 11살에 느끼고 있었다.
난 어떻게 했었지?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했던 방법은 뭐였지?
그냥 일상을 사는 수 밖엔 없었다. 그냥 그 감정을 느끼고, 무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무뎌지는 수 밖엔 없었다.
아이는 게임을 해보고, 음악도 들어보고, 만화책을 읽기도 했다. 나는 야심차게, 웃긴 이야기에 도전했지만, 결국 엄마의 완전 웃긴 학창 시절 이야기에 우리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을 수 있었다. 이로인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살짝 몰아낼 수 있었다.
아이는 그렇게 '죽음'과 사투를 벌이다 잠이 들었다.
함께 사투를 치르느라 나도, 아내도 지쳤다. 벌써 아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되었구나. 역시 아이는 잘 크고 있었다.
아이 덕분에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생겼다. '삶'과 '죽음'은 맞닿아 있다. 난 살아있기에 죽을 수 있고, 죽을 수 있기에 살아있다. 축축하고 더러울 것 만 같은 '죽음'의 길이 군데군데 있기에 '삶'의 길은 싱그럽다.
내일 행복할 필요는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난 행복하면 된다.
아이의 '사투'가 나에게 멋진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