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Sep 10. 2020

'싹'은 언제 트지?

'베란다 텃밭'을 일구다 알게 된 것, '지켜보기'와 '기다리기'의 힘.

육아휴직 후, 과감히 시도했던 것이 하나 있다.

'베란다 텃밭'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도전이다. 선인장도 죽이는 클래스에 이미 도달해 있는 나다. 식물과 교감은 오직 먹는 것으로만 가능하다 생각했다. 그런 내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베란다에 상추와 깻잎, 치커리 같은 쌈 채소를 기르기로 결심했다. 매주 삼겹살을 굽고, 베란다에 가서 상추와 깻잎을 따오는 꿈을 꾸었다.


또 하나의 꿈을 같이 꾸었는데, 아이에게 생명이 자라나는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 조차도 그 경이로움을 옆에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아이에게는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습지만 당시 난 아이에게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줘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게 있었던 듯하다.


주변에서 '모종'을 사야 한다고 했다. 단호하게 무시했다. 아이에게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줘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방금 부여받은 터였다. 당연히 생명의 본질인 '씨앗'부터 심어야 했다. 인터넷으로 가볍게 '베란다 텃밭 세트'를 구매했다. 며칠 후 자그마한 화분과 흙, 그리고 씨앗이 담긴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이 왔다. 상추, 깻잎, 치커리, 부추 등등 종류도 많았다.


아이와 함께 화분에 흙을 담고 씨앗을 심었다. 설명서(?)에 나와 있는 대로 물을 주었다. 며칠이 지나니 싹이 올라왔다. 한 구멍에 하나의 싹만 남기고 속아주었다. 너무 웃자란 놈은 지지대를 만들어 기댈 수 있게 해 줬다.


이쯤 되면, 아이가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동받아 일렁이는 눈망울로 날 쳐다보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래, 라는 느낌으로 그윽하게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도대체 언제 먹을 수 있는 거냐,며 수확의 기쁨만을 누리길 원했다.


과정보다는 수확만을 원하는 아이에게 실망했지만,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제 수확이 가능할지 궁금하기만 했다. 상추와 깻잎은 생각만큼 쑥쑥 자라지는 않았다. 참지 못하고, 우리가 흔히 먹는 상추와 깻잎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밥상에 올렸다. 상추 5장과 깻잎 3장이었다.


계속 관심을 가지고 관리했다면 몇 차례 수확해서 먹었을 거다. 수확의 기쁨을 '다소' 맛 본 후 베란다 텃밭은 그냥 방치되었다. 쌈채소들은 말라서 죽어버렸고, 흙은 옆의 다른 화분에 부어졌다. 그리고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켜보기'와 '기다리기'

아내가 격양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베란다로 달려가니 나무 옆에 '싹'이 보였다. 상추인지 깻잎인지, 아니면 부추인가... 어쨌든, '싹'이었다. 집에서 파종을 한 건 2년 전 베란다 텃밭을 일구던 시기밖엔 없다. 어떤 씨앗이든 간에, 그 씨앗은 2년 동안 싹을 틔울 순간만을 기다렸다. 흙속에 묻혀 가만히 기다린 것처럼 보였지만 씨앗은 끊임없이 성숙하고 있었다. 단지 그 순간이 2년 전이 아닌 오늘일 뿐이었다.


상추인가? 치커리인가?모르겠네... 키워봐야 알겠다.


씨앗을 심은 후, 싹이 트지 않는다고 과도한 물과 영양제를 주면 씨앗은 썩어버린다. 씨앗을 심고 해야 할 일은 적당한 물을 주고 그저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것은 2~3일 만에 싹을 틔우고, 어떤 것은 2년 후에 싹을 틔운다. 지금 이 씨앗처럼.


옆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19로 학교도 가지 않고, 학원도 가지 않는다. 학원은 보낸다, 는 집도 많지만 우리 집은 아니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줬다. 누나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찐이도 눈에 들어온다. 어린이 집도 가지 않고, 복지관 치료도 가지 않는다.


아이를 수포자로 만들 수 없어! 수학학원을 보내야지!
아이를 영어 잘하는 사람으로 키워야지!
영어 유치원에 보내자!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독서토론 학원을 보내자!

언어치료를 받아야지, 감각통합치료를 받아야지.
학교 들어가기 전에 발달시킬 수 있는 마지막 찬스야! 강남 유명 치료실로 다니자!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켜봐야 해. 아이는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시켜줄 필요가 있어. 그게 부모의 의무야. 이것저것 해봐도 잘하는 게 없으면 공부시켜야지


주변에서 이런 말들이 자꾸 들린다. 자꾸 들리니 불안하다. 우리 아이들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아이의 의견은 무시하고 당장이라도 수학과 영어 학원은 보내야만 할 것 같다. 빨리 수소문해서 강남의 좋은 치료실을 예약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내 머리로 기어 올라오는 그 순간, '싹'을 보았다.


부모의 의무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켜보는 게 아니다. 부모의 의무는 아이가 '싹'트는 모습을 지켜보는 거다. '싹'이 틀 때까지 기다리는 거다. 씨앗이 썩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싹은 튼다. 씨앗이 썩지는 않는지, 말라가지는 않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기다리는 게 부모의 도리이다.



상추와 깻잎으로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려 했던 내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움튼 상추와 깻잎 씨앗이 나에게 말했다. 아이가 다 알아서 하니 넌 그냥 지켜보라고, 상추를 심을 때는 생명의 경이로움이고 뭐고 생각하지 말고 잘 길러서 먹을 생각만 하라고 말이다.


오늘도 난 부모의 의무를 다하련다.


딸! 아들!
I'm watching you!
매거진의 이전글 장애를 헤쳐나가는 3가지 습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