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이와 어렸을 때 어떤 추억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대부분의 남매가 그렇듯) 음… 생각이 안 나더라. 즐거웠던 기억, 화가 났던 기억, 감동을 받았던 기억… 없다. 뭐가 이리 없을 수 있지… 더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없다. 함께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봐야 기억이 하나 둘 나올 듯했다.
방학에 얽힌 추억 한 대목이 생각났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정은이는 2학년 때, 엄마가 일을 다시 시작했던 것 같다. 교차로라는 곳이었는데, 아래와 같이 구인 구직 광고가 가득 차 있는 신문이었다. 엄마는 여기서 광고를 접수하는 일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가 일을 시작한 후 가장 달라진 점은 학교를 다녀오면 집에 엄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열쇠를 잃어버려서 집에 못 들어가고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다.
방학을 하면 하루종일 엄마가 없었는데, 친구들과 농구를 하러 나가지 않는 이상, 정은이와 하루 종일 놀아야 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남매가 그렇듯) 함께 놀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는 거다.
부루마불 같은 보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부루마불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2명이서 하는 건 재미없다. 친구를 불러서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 친구를 부를 순 없었다. 그래서 고스톱을 가르쳐줬다. 고스톱은 2명이서 해도 어마어마하게 재밌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명절에 모이면 어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스톱을 쳤다. 난 게임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고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오백 원, 천 원씩 개평을 주기도 하니 오락실에서 형들이 하는 게임을 쳐다보듯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곤 했다.
고스톱을 익히니 포커가 눈에 들어오더라. 친구들과 책을 하나 사서 포커 족보를 외우기도 했다. 포커 치는 법을 익히긴 했지만 초등학생이 친구들과 모여 포커를 친다는 건 조금 무서운 일이었다. 실전을 너무도 하고 싶었는데... 그 대상이 바로 정은이었다.
처음엔 너무 재밌었다. 내가 다 이겼으니까.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나를 따라잡기 시작했다. 내가 지는 빈도수가 올라가더니 이내 정은이가 더 많이 이기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고를 더 할 수 없어, 이건 새가 여러 마리잖아, 그러니까 껍데기로 쓸 수 있는거야, 홍단은 5점이야, 스트레이트가 플러시보다 높은 거야, 클로버가 스페이드보다 쎄!
나름 머리를 굴려 (내가 졌지만) 이길 수 있게 이런저런 사기를 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사기는 정은이에게 간파당했고, 정은이는 나를 추월해 버렸다.
내가 전에 이야기했던가? 정은이는 머리가 좋았다고. 머리에 종양만 없었다면 서울대 갈 수 있었을 거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었다.
이렇게 고스톱과 포커에서 나를 추월한 정은이는 도박의 세계에 한 발 더 들어갔다. 그러던 중 텍사스 홀덤이라는 포커 게임을 만났고 정식으로 홀덤의 세계에 입문했다. 넘쳐흐르는 자신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WSOP(World Series of Poker)에 나가 보지만, 높은 세계의 벽을 실감하고 돌아왔다. 절치부심하며 짝귀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줄 것을 말해보지만, 머릿속에 종양이 재발한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갔어도 재밌긴 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나를 추월한 정은이는 (대부분의 남매가 그렇듯) 라면을 끓여오라는 내 지시에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나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러던 중 머리에 종양이 있는 상태로 공부를 해 식품영양학과를 갔고, 카페에서 알바를 하다 결국 카페를 운영했다. 코로나의 높은 벽을 실감하기 직전 카페를 접었고 지금은 오빠와의 고스톱 매치를 준비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성인이 된 이후로 (대부분의 남매가 그렇듯) 정은이와 고스톱을 친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옛 추억에 빠져들 겸 자리를 한 번 마련해야겠다. 아직도 그때의 실력이 남아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