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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Sep 27. 2024

가슴이 아리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병원 진료가 잡혔다. 평소라면 무조건 함께 갔을 거다. 두 손을 꼭 잡고 진료실 앞 대기 의자에 나란히 앉았을 거다. 딸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괜찮을 거라 나직이 말했을 거다.

병원 진료 시간이 장애인 손자의 언어치료 시간과 노모의 병원 일정과 겹쳐버렸다. 그래도 완전히 겹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랄까.

치매 걸린 노모의 밥을 차려주고 빠르게 뒤따라 가기로 했다. 병원이라는 곳, 특히 종합 병원이 그렇듯 항상 지연되기 마련이다. 밥을 차려드리고 재빠르게 뒤따르면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경순 씨는 성격이 급하다. 1인분씩 누르는 쌀통을 기억하는가? 3인분 밥을 하려면 버튼을 3번 눌러 쌀을 빼내야 한다. 경순 씨는 대개 너무 빠르게 버튼을 눌러서 2인분만 나온 건지 3인분이 나온 건지 헷갈려했다.

손도 무지하게 빨라 반찬도 빨리빨리 척척해내고 상차림도 상을 치우는 것도 빠르다. 어딜 가나 일머리가 좋다는 말을 듣는 경순 씨다.

일머리 있는 경순 씨는 빠르게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가슴은 뛰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툭툭 털어내고 재게 손을 놀렸다.

이 정도면 함께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료실 앞에 도착하니 이미 진료를 마치고 나와있는 딸아이가 보였다.

"엄마, 나 수술해야 한데"

슬프도록 담담하게 말하는 딸아이의 손을 잡았다. 손은 차가웠다. 말소리는 담담했지만 손은 그렇지 않았다.

혼자 온 딸아이를 보며 의사는 이렇게 말했단다.

"아이고… 오늘 같은 날도 혼자 왔어요? 보호자는 같이 안 왔네요?"

수술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의사는 몇 달 후 잡힌 또 한 번의 진료에서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날은 함께 갔갔다. 의사의 말을 들은 딸아이 얼굴이 창백해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듯했다. 의사는 봉지를 가져와 딸아이의 입에 대면 천천히 호흡하라고 했다.

불치병에 걸린 딸아이를 보면 경순 씨는 병원에 함께 가지 못한 이 날이 자꾸 생각난다. 언어치료가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그냥 취소했어야 했다. 그깟 밥 한 끼 안 먹는다고 얼마나 큰일이 일어나기에…  밥이고 뭐고 딸아이의 손을 꼭 잡고 병원에 함께 갔어야 했다. 후회만 남아 가슴을 긁어댄다.

혼자 탔을 지하철에서 지독한 적막함을 느꼈을까? 지하철에서 병원까지 혼자 걸어가며 외로움을 느꼈을까? 진료실 의자에 앉아 차가워지는 손 때문에 초초함을 느꼈을까? 혼자 왔냐는 의사의 말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무서움을 느꼈을까?

진료가 다 끝나고 나서야 걸어오는 엄마를 보며 원망을 하진 않았을까?

가슴이 너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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