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멈가 Jun 25. 2023

작가라고 우기기로 했다.

<글쓰기라는 묘한 희열> 출간




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기쁨을 만끽할 여유 따위 없었다. 이미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얼른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런 나의 초조함과는 무관하게 현실을 냉정했다. 30곳이 넘는 회사에 지원했지만, 대부분은 서류에서 떨어졌다. 그나마 면접 기회라도 잡은 곳은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나날이 자존감이 추락하던 어느 날, 기적처럼 합격 통보를 받았다. 먹던 햄버거를 던지듯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혹여나 내가 잘못 읽은 건 아닐까, 내게 온 건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그토록 입사하고 싶었던 업계 최고의 회사였다.



 'O병원 주임 연구원'


어렵게 취직한 만큼 명함 속 나의 직함이 자랑스러웠다. 명함을 주고받는 시대가 지난 걸 알면서도, 친구를 만나면 괜히 명함을 나누어 주곤 했다. 그땐 몰랐다. 그 마음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고군분투하며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업무도 제법 익숙해졌고, 후임 직원도 들어왔다. 소위, 짬을 먹은 것이다. 오랜만에 서랍 속에 두었던 명함을 꺼내어 보았다. 명함은 그대로인데 어째서인지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초년생 시절과 달리, 그럴듯한 이 직함을 보고 있자니 회의를 느꼈다.


‘이걸 빼면, 과연 나를 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진 나이가 된 탓일까? 이제 와서 웬 정체성에 관한 고민인가 싶어 나조차도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회사라는 그늘을 벗어나도 나를 수식해 줄 단어를 찾아야 했다. 게다가 우리는 윗세대를 보며 회사는 절대 노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지 않았던가?



퇴근 후, 여가 시간을 이용해 제2의 정체성을 찾기로 했다. 추가 소득이 있으면 더 좋고. 유튜브를 개설해 짧은 영상도 올려보고, 스마트 스토어에 상품등록도 해보았다. 영 즐겁지 않았다. 이제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안다. 나는 곧 죽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 일들은 마음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좋다니까 따라 시작한 일이었다. 다른 건 또 뭘 해볼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길은 의외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방황하는 마음을 글로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쌓인 글을 다시 읽어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감정이 낯설지만 나쁘지 않았다. 늘 소비만 해온 내가, 처음으로 '생산자'가 된 순간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자꾸만 기회가 찾아왔다. 먼저, 재수 끝에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아볼 수 있었다. 얼마 만에 두근거림이었는지 모른다. 브런치는 내 글을 여기저기 노출시켜주어 읽어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그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



또 동경하던 스테르담 작가님의 공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우리는 한 달간 매주 두 편의 에세이를 썼고, 2주의 퇴고 과정을 거쳐 책 한 권을 완성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 <글쓰기라는 묘한 희열>, 실물화된 나의 글을 손에 쥐니, 말 그대로 '묘한 희열'이 느껴졌다.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라는 스테르담 작가님의 말처럼, 나는 작가라고 우기기로 했다. 비록 아직 글로 돈 한 푼 벌지 못하지만,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일은 내게 금전적 가치 이상을 준다. 마침내 회사의 직함이 없어도 나를 설명해 줄 수식어를 찾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퍼스널 브랜딩의 첫걸음은 솔직하게 쓰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