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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May 27. 2023

글쓰기를 오해할 뻔했다.



초등학생 시절, 학원에는 구미호라는 별명을 가진 선생님이 계셨다. 상당히 미인이셨는데, 그래서 국어 시간을 좋아했다. 하루는 구미호 선생님과 일대일 수업을 받았다. 글자를 틀려 지우개로 지워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단어 전체를 지우면 다시 써야 하기에 틀린 받침 하나만 지우기 위해 신중을 기했다. 그걸 본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그렇게 지우는 게 더 힘들겠다. 그냥 다 지우고 다시 써."



나는 글 쓰는 걸 지독하게도 싫어했다. 비단 펜으로 쓰는 것뿐만이 아니다. 대학 시절,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레포트를 쓰는 일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A4용지 몇 장을 채울만한 내용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다들 어떻게 그리 길게도 글을 쓰는 것인지 신기했다. 결국, 인터넷에서 베껴와 억지로 늘려 쓰고는 했다. 점수야 뭐 뻔했다. 그런 점수를 받다보니, 글쓰기가 더욱 싫어졌다. 지금에 와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글을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느 날 갑자기 글쓰기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돌이켜 보건대, 복잡한 마음을 풀 수단이 필요했던 것 같다. 퇴근 후 어두운 방에서 간접 조명만을 켜둔 채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이 좋았다.한결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블로그에 짧은 에세이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내 글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여전히 긴 글을 쓰기는 어려웠고, 끝맺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했다. 그때쯤, '글쓰기도 배워야겠구나' 생각했다.



서점에 가니 구석진 위치에 글쓰기 관련 코너가 있었다. 그중 유명하다는 책을 몇 권 사 들고 왔다. 그렇게 팔자에도 없던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뒤늦게 솟아난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채우고 싶었다. 꽤 맘에 드는 글이 한 편 완성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생산자가 된 느낌이 퍽 좋았다. 비록 찾는 이는 없지만, 나는 그 생산물을 읽고 또 읽었다.



하마터면 글쓰기를 오해할 뻔했다. 똑똑한 양반들이 지식을 쏟아내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나는 글쓰기를 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였다. 글을 쓰면 쓸수록 생각이 정리되었다. 가치관이 뚜렷해졌다. 머릿속을 떠돌던 무수한 조각들이 맞춰졌다. 평소에 생각은 많은데,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이유는 정보가 파편 상태로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 조각을 맞추자,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무슨 그림인지 알게 된 이상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오늘도 썼다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여전히 글을 쓰기가 어렵다. 아니, 알수록 더 어렵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고뇌(苦惱)를 동반한다. 고뇌는 쓸 고(苦)와 번뇌할 뇌(惱)로 이루어져 있는데, 둘 다 '괴롭다'는 뜻을 가졌다. 아니,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괴롭다는 뜻을 가진 한자 두 개를 붙여 놨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굳이 그런 고뇌를 사서 한다. 휴일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짠다. 그리고 어느새 글 한 편이 완성되어 간다. 이 시점에선 기쁨이 찾아온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기 때문일까? 모순되게도, 글쓰기의 고뇌는 '행복한 고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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