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꼭 개구리알 같아요.”
한참을 들여다보던 현미경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난자의 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난임센터에 신입으로 입사하여 처음으로 사람의 난자를 보고 느낀 점이었다. 난자 10여 개를 모아놓으니 마치 개구리알처럼 보였다.
‘사람 것이라고 뭐 더 대단치도 않구나.’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다른 동물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물의 시작은 참으로 조촐하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좁쌀보다도 훨씬 작은 세포에서 시작하는데, 너무 작고 연약해서 자칫하면 다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난자를 다룰 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어떻게 이게 사람이 되는 걸까 여전히 신기할 따름이다.
Egg의 뜻은 대부분이 안다. 아마도 계란을 떠 올릴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람의 난자 역시 영어로 egg이다. 이는 여성의 난자와 새의 계란이 생식학적으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포단계에서 우리는 특별할 게 없다는 뜻이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이 된 다음은 어떨까? 유감스럽게도 아직 인간의 비범함은 드러나지 않는다. 배아 초기 단계에서는 어떤 동물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그 시기에는 우리 모두 아가미와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어류인지 파충류인지 아니면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발생학적으로도 우린 그렇게 대단한 생물이 아닌 것이다.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심지어 인간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말했다. 성행위, 싸움, 집단행동, 그리고 양육 등 어느 부분에서도 인간은 동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는 종교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과학적으로는 분명하게 맞아떨어진다.
진화과정에서 우연히 우위를 점하여 눈 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인간은 분명 동물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동물을 맘대로 할 수 있다. 잡아먹을 수도, 실험을 할 수도 있다.‘라는 댓글을 보았다.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정확히는 ’할 수 있다.‘라는 부분에 동의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럴 능력이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사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미안해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오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 수 있음에도 때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