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 한 문장 144

2025.05.23.

by 무무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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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 영역밖의 일이다.


우리 반 아이가 청국장 국물을 머리부터 바지까지 뒤집어썼다. 급식실에서 아이들이 이동하다가 서로 부딪히며 앉아서 밥 먹고 있던 아이에게 쏟은 것이다. 다행히 식은 국물이었다. 하지만 그냥 국물도 아니고 청국장이다. 국물을 뒤집어쓴 아이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렸다. 물로 헹궈도 빠지지 않는 냄새며 급식을 먹지도 못한 상황 속에서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아무런 죄도 없는 본인이 외출해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진정시키는 과정은 참 어려웠지만,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다시 온 아이의 표정은 밝았다. 아이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받아들인 것이다. 더 이상 누구를 탓하지 않고 미워하지도 않고 5교시에 집중했다. 그 아이의 모습이 참 기특했다.


나라면 5교시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나는 요 며칠 일기 쓰기를 미뤘다. 내가 안 괜찮다는 이유로 모든 일에 늦장을 부렸다. 나는 5교시에 집중하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청국장을 뒤집어쓴 아이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임을 일찍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새로운 옷으로 빨리 갈아입고 내 시간을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언제든 나도 급식실에서 청국장을 뒤집어쓰는 사고를 당할 수 있다.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내게 벌어질 수 있다. 어떤 상황이든 벌어질 수 있음을 수용하자. 현명한 우리 반 아이처럼. 그리고 그건 내 영역밖의 일임을 인정하고 다음 시간으로 나아가자. 청국장을 뒤집어쓴 그 시간에 머물러있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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