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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성 Oct 30. 2022

구겨진 글뭉치 - 졸업

내가 쓴 흰 백의 유서들을 찢어 눈처럼 던지면 그 눈들이 지상에 내려와 검게 물들어 그제야 유서의 문장이 생깁니다. 지상에 닿아야 생기는 나의 유서 깊은 문장들을 읽다 보면 어느새 거리의 끝에서 나는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때론 쉽게 태어나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렵게 태어난 나를 달래주고 싶지도 않아서. 나는 학교 옥상에 올라 먼 빛들을 보곤 했습니다. 저 방안에 갇힌 빛을 보세요. 아마 나는 거기서 메마르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래도 선생님. 예전에 과수원에서 썩은 과일들의 단내를 맡으며 나무가 되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내 몸의 한 부위가 썩어 단내가 나고, 그 과일이 썩어 나의 자양분이 되는, 순환형의 자급자족을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은 기필코 아름다워지고, 내가 싫은 것들은 교실의 의자를 밀고 일어나 선풍기처럼 고개를 휘휘 젓습니다. 교실엔 하필 유령이 있고 그 유령은 휘발되지 않는 신체를 가지고 있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선생님. 저는 시간마다 유령이었고 사람마다 유령이어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십니다. 혹여 제가 어느 날 죽거든 휘발된 제 자리 서랍에서 흰 꽃을 하나 꺼내어 올려주세요. 제가 만든 문장들을 모두 뭉쳐도 제가 되지 않는 기적을 봐주세요. 하지만, 친구들은 아무도 울지 않을 것입니다. 우는 것이 사치가 아니라 우는 것이 사람이 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제각각 우는 방식이 다르고 나는 딱딱한 발바닥처럼 우는 사람. 눈물에 썩은 단내가 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기필코 제가 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다보면 미쳐버린 밤이 오고 미쳐버린 밤에 흐르는 구름과 그 구름에서 떨어지는 봉숭아물처럼 달빛을 물들어버린 천사들과 낙하할 겁니다. 몸을 밀어내면 빈자리가 보이고 그 빈자리에 서 있는 죽은 나의 친구. 여러분. 저는 불행하거나 행복하다거나 하는 문제를 떠나 기필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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