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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Sep 17. 2018

당신은 전생에 코알라였을지도 모른다

소심한 당신이 동질감 느낄 코알라 상식 5

Q. 다음 중 당신에게 해당하는 것을 모두 고르시오(복수 응답 가능).

1 온종일 침대에서 보내고 싶다.

2 매일 뭐 먹을지 고르기 귀찮다.

3 사람들과 사교적 대화는 하루에 15분이 적당하다.

4 다툼은 너무 피곤한 일이라 가능한 한 피한다.

5 적게 누리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살고 싶다.


세 개 이상 포함되면 당신은 전생에 코알라였을지 모른다. ‘웬지 나, 인간 사회엔 맞지 않는 것 같은데’라고 느껴왔을 당신을 위한 잡학상식. ‘알아두면 도움 될지 몰라 코알라 편!’


‘여행은 가지 않고 여행 가이드북만 보며 즐거워하기’란 취미가 있다. 딱딱한 이코노미석 의자에 엉덩이가 마비되고, 아픈 다리 누일 카페 찾느라 헤매는 진짜 여행과 달리 가이드북만 보는 상상 여행은 편안한 즐거움을 준다. 지난해 여름 호주 여행이 끌리기에 《론리플래닛》 호주 편을 펼쳐 들었다. 가이드북으로 마주한 호주는 대단했다. 거대한 대륙에 펼쳐진 이국적 풍경. (상상 속에서) 큰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서핑하고, (상상 속에서) 공원 하이킹을 했다. 


‘이것이 남반구의 멋짐인가’ 감탄하고 있을 무렵 가이드북의 한 대목이 나를 몹시 불편하게 했다. ‘자연환경’ 파트에서 코알라를 한껏 비꼬고 있던 탓이다.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자면, “야생동물 공원이나 동물원에 가면 코알라의 멍한 눈길을 눈치챌 기회가 있을 것이다. 수년 전 생물학자들은 코알라가 자기 두개골 크기에 맞지 않

는 뇌를 지닌 유일한 생물이라고 밝혔다. 코알라의 뇌는 주름진 호두 모양으로, 액체가 가득 찬 두개골 안에서 돌아다닌다.”


호주 국민 동물이라면서 이렇게까지 말하면 너무하다. 뇌가 두개골에 맞지 않아 이리저리 굴러다닌다니.

코알라가 정말 놀림당할 동물인가 싶어 인터넷 검색에 나섰다. 그랬더니 글쎄…… 코알라는 생각보다 더 독특한 동물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론 묘하게 나 자신과 비슷했다. 코알라의 특성 하나하나가 내 존재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뇌가 호두라니


1 온종일 침대에서 보내고 싶다

코알라는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잔다. “우리 집 고양이는 맨날 잠만 자요”라는 고양이의 수면시간도 하루 13시간이다. 개는 10시간, 인간은 8시간, 소는 4시간, 양은 3.8시간. 일반적으로 육식동물은 수면시간이 길고, 저칼로리 채식을 하는 초식동물은 수면시간이 짧다. 풀을 끊임없이 먹어야 하기에 그렇다고 한다. 비일반적이게도 코알라는 초식동물이면서 잠을 오래 잔다. 호주 여행 떠난 사람들이 잠자는 코알라밖에 못 봤다며 불평하는 건 이런 이유다. 


나 역시 침대를 무척 좋아하고 잠자기를 즐긴다. 주말엔 스스로 ‘수면 테라피’라고 이름 붙인, 끝없이 잠자기를 실행한다. 푸욱 자고 나면 일주일 중 유일하게 말짱한 정신이 되곤 한다.


2 매일 뭐 먹을지 고르기 귀찮다

코알라가 삶 대부분을 잠자며 보내는 이유는, 지독한 편식가인 탓이다. 코알라는 오직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다(소수의 예외도 있긴 하다). 그런데 유칼립투스 잎은 다른 잎에 비해 영양가가 낮다. 그렇기에 어른 코알라의 경우 하루에 2,000개 정도의 잎은 먹어야 한다. 깨어 있는 시간을 따지면, 1분에 여덟 개 잎 꼴로 꼬박꼬박 먹어야 한다는 소리다. 유칼립투스엔 약한 독성까지 있어 소화하는 일도 피곤하다. 에너지를 최대한 비축하고자 코알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특이하게도 영양가 높은 다른 잎을 줘도 코알라는 본체만체한다고 한다 .


나도 가던 음식점만 주야장천 간다. 마시던 술, 먹던 음식을 바꾸지 않는다. 원래 누리던 안락한 패턴을 벗어나기 싫다 .


3 사람들과 사교적 대화는 하루에 15분이 적당하다

무리 생활을 하면서도 코알라의 사교적 행위는 무척 짧다. 야생 코알라를 연구한 호주 연구진에 의하면 코알라는 하루 15분 정도 다른 코알라와 소통한다. 얼굴을 마주보고, 손발을 건드려보는 모든 사교 행동을 포함해 15분이다. 15분이 지나면 원래의 자신, 즉 유칼립투스 잎을 뜯거나 꾸벅꾸벅 조는 모습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루 15분간의 사교’ 이상적이지 않은가. 모든 사람이 법적으로 15분만 소통할 수 있다고 치자. 만약 그렇다면 그 15분은 순수한 환대로 가득할 테다. “너에 대해 알고 싶어. 네 이야기를 들려줘.” 소모적인 허식은 사라지고, 자기 에너지를 최대한 담아 상대와 소통하게 될 것이다.

 


15분이면 충분해. 뒤도 안 보고 돌아서는 쿨알라

4 다툼은 너무 피곤한 일이라 가능한 한 피한다

코알라도 싸우긴 싸운다. 2017년 호주 애들레이드 스털링의 한 도로에서 두 코알라가 싸우는 모습이 동네 주민 마거릿 스미스 씨에 의해 촬영되었다. 서로 상대의 동그란 머리통을 잡고 흔들어대는 장면은 코알라를 사랑하던 많은 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내가 알던 코알라는 이렇지 않아. 흑흑.” 하지만 걱정 마시길. 코알라에게 싸움은 무척 드문 일이다. 코알라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행동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해 아무리 화나도 공격적 행동을 하는 일이 드물다. 동네에서 코알라를 수없이 봐왔던 호주인 마거릿 스미스 씨도 코알라가 싸

우는 건 태어나 처음 봤다고 말했다.


난 갈등 상황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웬만한 불만은 삼키고 산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상대가 두렵기도 하지만, 다툼 과정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겨서가 더 컸다. 고등학교 때 주먹다짐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일종의 ‘승리’를 취하고도 마음이 너무 안 좋아 그냥 맞고 말걸, 싶었다.


5 적게 누리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살고 싶다

하루에 20시간씩 자며, 에너지를 아끼고 아끼며 근근이 살아가는 코알라. 얼핏 불우해 보이는 코알라의 라이프스타일은 사실 그들이 택한 삶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 


코알라A : 고급 풀을 먹으려고 캥거루들과 경쟁해야 하는 걸까? 

코알라B: 난 싸움이 싫어. 차라리 아무도 안 먹는 유칼립투스를 먹는 쪽이 낫겠어. 허기는 지겠지만 누워 자면 그뿐이잖아.

코알라C : 맞아. 싸우는 미식보단 평화로운 절식을 택하겠어!


어릴 적 내 꿈은 ‘조금 일하고, 돈 충분히 버는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런 직업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내 지금 꿈은 ‘적당히 일하고, 먹고 살 돈을 버는 상태를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어릴적 선배들은 “일은 다 힘들어. 돈 많이 주는 일이 장땡이야”라고 훈계했으나 내겐 해당 사항이 없다. 괴로운 일을 하면 너무 괴롭다. 고로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하지 않겠다. 유칼립투스 잎만 먹을지언정.


아무리 봐도 제 전생은 코알라가 분명한데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번외 편: 전투 코알라 가설

평화로운 코알라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는 이들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진 ‘전투 코알라’ 가설에 따르면, 코알라는 사실 강력한 전투 종족이다. 온종일 나무에 매달려 있을 수 있는 강력한 근력으로 상대를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다. 성격이 예민해 마음에 안 드는 동물들을 공격해 호주 대륙은 쑥밭이 됐다. 참상을 마주한 코알라들은 자신의 폭력성을 반성한다. 그리고 스스로 힘을 봉인하고자 일부러 마취 성분이 있는 유칼립투스 잎만 먹기로 한다. 유칼립투스 잎을 먹는 동안은 자기 본성을 억누르고, 잠이나 자며 멍하게 보내게 된다.


이때 유칼립투스 잎을 거부한 몇몇 코알라들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지역으로 이주했는데, 그 포악성에 인간들이 쩔쩔맸다고 한다. 쿠알라룸푸르 (Kuala Lumpur)의 원래 지명은 바로 ‘코알라 룸푸르(Koala Lumpur)’, 코알라 의 땅이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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