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의 끝은 언제나 퇴사

by 율무


한 때 나의 롤모델이었던 전무님이 퇴사하시고 다른 분과의 식사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편의 상 다른 분을 'P'라 칭한다)




P : 쉬시니까 어떠세요? 그동안 일만 죽어라 하고 사셨으니 이제 좀 편하고 좋으시죠?


전무님 : 아침에 알람을 안 맞춰도 늘 일어나던 시간에 눈이 떠진다? 그럼 멍 때리고 있다가 일어나서 방을 서성거리다가 9시가 가까워지면 베란다에 나가서 창밖을 내다봐. 그래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 보고 있으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다? 나는 이제 갈 곳이 없는데 저들은 저렇게 바쁘게 갈 곳이 있구나 싶어서.


P : 에이, 그동안 너무 일만 하셔서 그래요. 쉬는 법을 몰라서. 일어나는 것도 습관 되면 해가 중천에 떠도 잘 수 있습니다? 모아둔 돈도 많으실 테니 조금 편하게 쉬셔도 되죠.


전무님 : P, 나 모아둔 돈이 없어.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는데 돈이 어디로 다 새나갔는지 모르겠다. 내 나이가 아직 60도 안 됐는데, 나 우리 엄마도 모시고 살아야 하는데. 이제 앞으로 뭐 해 먹고살지?


P : 전무님이 그런 걱정을 하실 줄은 몰랐는데요..


전무님 : 나도 몰랐다. 정년까진 다닐 줄 알았지. 사람 일 참 알 수가 없다. P 너도 늘 대비해.





"안 그럼 나처럼 된다고 웃으면서 저주를 하시더라고?"


P는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치부하며 대화 내용을 전달했지만, 나는 심각해졌다.

내가 이 일화를 들었을 때는 입사한 지 고작 5개월쯤 된 신입 사원이었는데, '회사를 20여 년 열심히 다녀도 결국 퇴사하면 끝이구나, 회사만 열심히 다닌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퇴사를 해보니 알겠다. 모든 직장 생활의 끝은 퇴사라는 걸.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모든 직장 생활은 회사를 나가는 것으로 귀결된다.

죽기 전까지 평생 다닐 수 있는 회사는 없다. 회사는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자기 계발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다.


언제든 이 회사를 관둬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다녀야 한다.

그게 항상 퇴사를 생각하라거나, 사직서를 마음속에 품고 다니면서 일을 대충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도 좌절하지 않고 유연하게 다음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부업이 될 수도 있고, 꾸준히 역량을 키우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성격의 시험을 공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회사를 넘어 내 삶에 대한 준비를 하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퇴사의 순간을 맞아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그러는 나도 딱히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한 사람은 아니라서 어딘가 좀 찔린다.

자기계발 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 해낼 수 있었다는 것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그 와중에 글을 놓지 않아서 지금 이 글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이것도 나름의 자기 계발이지 않을까.(라고 우겨도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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