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밖으로 많이 나돌고 있다. 누굴 만나는 건 아니고 혼자서 나돌아 다닌다. 잠깐 내 성향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정말로 지독한 집순이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면서 몇 명 이상은 모이지 말고, 특별한 사정이 아니면 외출도 삼가라고 했는데 나는 그러한 권고가 반가웠다. 강제적인 조치가 불편하다는 사람도 많았던 걸로 안다. 매일같이 사람을 만나고 밖으로 나가고 먹고 마시기를 즐겼던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은 일일 것이다. 내 친구 중에도 극으로 외향적인 친구가 있는데 일주일에 최소 6일은 외부로 나가는 친구다. 여기서는 최소라는 말이 핵심이며 하루에 2-3건의 약속이 있기도 하다. 늘 비슷한 성향의 친구만 만들며 살아온 인생에서 특이한 인연이다. 그 친구는 나가지 못하는 시간들에 좀이 쑤신다고 했다. 나는 좀이 쑤신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 안달 난 친구에게 가짜로도 공감해 줄 수 없었다. ‘나는 사실 집순이가 아니었다. 나는 내향형 인간이 아니다.’는 깨달음도 많았다고 한다. 자율성이 있을 때는 얼마든지 집에 박혀있길 원했는데 나가지 말라니 나가고 싶어 진다는 거였다. 나는 그러한 반응에도 역시 공감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나가기 싫은데 공식적으로 나가지 말라니 땡큐였다. 일만 없다면 5평짜리 집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사람이 나다.
그토록 강경한 집순이자, 어쩌면 은둔형 외톨이일지도 모르는 내가 요즘 계속해서 밖으로 나간다. 사실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이유 중에서 나갈 준비가 귀찮은 게 한몫한다. 씻고, 머리 감고, 말리고, 얼굴에 뭔가 끼얹고, 옷을 입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죄다 귀찮다. 그건 아무리 반복해도 귀찮은 일이다. 그래서 이 귀찮음을 줄여보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리기 때문에 세수는 하기로 하고 머리는 안 감는다. 얼굴엔 간단히 크림과 선크림만 바른다. 사실 선크림도 안 바르고 싶지만 내 피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그간 내가 외출 시에 꼭 화장을 했던 이유는 트러블이 심해서 어떻게든 가리고 싶고, 짝눈도 심해서 어떻게든 대칭을 맞추고 싶고, 코도 낮아서 어떻게든 높이고 싶고 등등인데 그런 걸 다 포기했다. 아무리 열심히 씻고 발라도 트러블이 계속 나는 걸 어쩌랴. 눈도 코도 이렇게 태어났는데 어쩌겠나. 그리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모자를 푹 눌러쓰면 내 친구들도 나인지 모를 것이다.
옷도 대충 아무거나 풍덩하고 편한 옷을 집어 입는다. 밖으로 자주 나가려면 무조건 크고 편한 옷이 한 벌쯤 있어야 한다. 브래지어는 안 한다. 여자라면 공감하겠지만 브래지어만큼 귀찮고 불편한 것이 없다. 나에게는 브래지어가 생리만큼이나 불편하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와이어도 후크도 없는 편한 브라를 착용해오고 있지만 더운 계절에는 그마저도 불편해서 잘 안 하고 다닌다. 가슴이 그리 큰 편은 아니라서 넉넉한 옷을 입으면 티가 안 난다. 사실 티가 나도 어쩔 수 없다. 이것도 튀어나오게 태어난 걸 어쩔 텐가.
준비과정을 줄이니 나가기 한결 수월해졌다. 가벼운 천 가방에 책 한 권과 물 한 병, 지갑 정도만 챙긴다. 솔직히 이것만 있으면 하루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무작정 걷는다.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는 채로 걷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가야 할 장소나 정해진 시간 없이 마음대로 걷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한 가지 의식할 게 있다면 평소에 잘 가지 않는 길로 가보는 것이다. 새로움을 느끼는 것은 뇌를 자극하는데도 좋다고 했다. 사실 나는 길치여서 몇 번 가본 길도 새롭게 느낀다. 길치의 장점이다.
미지의 곳을 탐험하는 탐험가가 된 기분으로 걷다가 왠지 느낌이 꽂히는 가게들을 발견하게 된다. 낡고 오래된 간판을 단 칼국수집이나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타코집, 촌스러운 이름의 카페나 유기농 재료만을 사용한다는 빵집 등이다. 그럼 지도를 켜고 가게를 찾아 별표를 눌러둔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보면 어느새 곳곳에 별이 생겨있다. 나만의 보물지도가 생긴다. 그곳들을 나중에 가볼지 어떨지는 모른다. 내가 또 언제 나가고 싶어 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다가 할머니가 끓여준 것 같은 칼국수나 건강한 맛의 빵이 먹고 싶어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때 보물지도의 별들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고, 실제로 별의 자격이 있는지는 그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걷다가 조용한 공원이나 앉을만한 곳을 발견하면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이런 글을 끄적이기도 한다. 이런 나날들을 거의 매일 반복하고 있다. 이유는 햇볕이나 바람을 직접 맞는 일이 새삼스럽게 행복하기 때문이다. 땅에 발을 디디고 걷는 느낌은 내가 아직 괜찮다는 위로를 준다. 이렇게 산책할 수 있고,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고, 글을 읽든 쓰든 할 수 있는 내가 그래도 괜찮게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내 작은 방에 틀어박혀 혼자이고 싶은 마음을 이기고 많은 것을 내려두고 밖으로 나간다. 혼자 있을 때보다 밖으로 나가 직접 마주하며 알게 되는 것이 많음을 배우는 요즘이다.
2023. 6. 14.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