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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Jul 26. 2019

홈쇼핑 PD! 택배기사가 되다!

'00 통운 택배기사입니다. 경비실에 물품을 맡겨 놓았으니 꼭 찾아가세요'


온라인 유통이 대세가 된 지금, 쇼핑에 크게 관심이 없는 저조차도 택배기사님들의 배송 완료 문자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꼭 받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물건은 물론이고 상하기 쉬운 식료품마저 주문만 하면 하루 이틀 내로 오니 얼마나 편리한지. 요즘은 당일 배송 서비스도 생겨서 아침에 주문해서 오후나 저녁쯤 받아보는 일도 매우 흔해졌습니다. 

서비스가 흔해진 만큼 잡음도 끊이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택배 서비스에 대한 불만부터 아파트 입주민 전체와 택배회사, 택배기사 간의 갈등까지 사회의 큰 이슈가 될 만큼 택배 서비스는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택배 서비스와 뗄 수 없는 회사에서 일하며 실제 택배 배달 업무를 경험하면서 택배기사분들과 택배 서비스에 대해 느낀 점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택배기사님, 물건을 그냥 현관 앞에 두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전화나 문자를 미리 주셨어야죠"

"아.. 부재중이셔 가지고.."

"저 집에 계속 있었는데 거짓말하실 거예요? 초인종 눌러보셨어요?"

"아..집에 아기가 있는 분들도 있고 해서.. 암튼 다음부터는 꼭 미리 연락드릴게요"


하마터면 분실될뻔한 제 물건에 씩씩대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택배기사님은 양반에 속합니다.

어떤 택배기사님은 퉁명스럽게 '없어지면 제가 물어드릴게요'하고 전화를 끊은 적도 있습니다.


홈쇼핑에 입사하여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중 택배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홈쇼핑에서 택배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평소 같으면 그냥 조용히 교육만 받을 텐데 그때까지 겪은 스트레스로 저도 모르게 택배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왜 택배기사님들은 연락을 안 하시고 집 앞에 물건을 두고 가실까요? 사람이 집에 있는데 경비실에 물건을 두고 가는 건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저의 볼멘소리를 끝까지 경청한 신입사원 교육 담당자는 교육의 일환이자 현장 점검의 의미로 이틀 정도 실제 택배 업무를 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싫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불만을 쏟아내 버린 상황. 제가 왜 택배를?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솔직히 택배 기사님들의 일과가 궁금하기도 해서 실제 택배기사님과 이동하면서 옆에서 업무를 도와드리는 수준으로 협의를 하고 바로 다음날 아침 회사가 알려준 택배회사로 향했습니다.

 

8시 30분 정도 되었을 때 택배 기사님이(이하 기사님으로 통칭)  차량에 그날 배달해야 할 상품을 실어야 한다고 해서 나갔는데 이거 웬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많은 양의 택배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택배차량에 저게 다 들어갈까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는데 오늘 안에 다 배달해야 한다고 믿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배송 지역별로 분류된 택배 상자를 차량에 싣는데 무작정 넣고 보는 저와 달리 기사님은 흡사 테트리스를 하듯 빈틈없이 차량을 채워나갔습니다. 모든 택배 상자를 싣고 배송지역으로 가던 도중 가볍게 이야기라도 하고 싶었으나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배송지역 고객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돕고 싶은 마음에 제가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안 받는 고객이 절반 이상, 받은 고객 중 절반 이상은 집에 있지 않아 위탁 장소를 알려주었습니다. 당시에 집에 사람이 있는 경우가 너무나 적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전화를 받지 않는 고객들은 또다시 문자를 보내 위탁 장소를 물어보고, 집에 있다고 해서 배달을 갔더니 부재중이라 다시 연락을 하고 하는 통에 고객에게 배송 사전 안내하는 속도가 배달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점심 이후부터는 거의 단체 문자를 보내며 배달을 했었습니다. 

전화기도 기사님만큼 바빴습니다. 기사님이 거는 전화, 보내는 문자, 그 문자에 대한 고객의 답 등 끊임이 없었는데 1시간에 한두 번은 택배 언제쯤 오냐는 고객들의 전화까지 겹쳐 전화기는 말 그대로 내내 울리는 상태였습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그날 20개 정도의 택배를 제가 직접 배달을 했는데 남성이 혼자 살던 집과 대가족이 북적대던 집, 이 두 집을 제외하고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택배기사임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현관 앞에 택배를 두고 가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이 때는 코로나 전이라 대부분 대면 배송을 했던 때입니다)

한 번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현관 앞에 둔 후 위쪽 층에 올라간 기사님을 기다리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5분 정도 서있었는데 그제야 현관문이 열리며 여성분이 조심스레 택배를 가지고 들어가다 저랑 눈이 마주쳐 기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각박해진 세상 탓에 직접 택배 받기도 조심스럽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고객일 때는 몰랐는데 막상 택배기사가 되어 배달을 하다 보니 연락이 안 되는 고객 때문에 곤란한 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나마 아파트면 경비실에 맡기는데 그나마도 부피가 큰 상자는 본의 아니게 경비원 분들의 눈치도 보게 되었고 빌라나 관리인이 없는 원룸 같은 곳은 초보 택배 기사인 저에겐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이런 택배 중 일부는 기사님이 현관 앞에 두고 고객에게 문자를 남기기도 했고 일부 물건은 늦은 시간에 다시 와서 배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황당했던 에피소드는 연락을 안 받던 고객의 집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나온 분이 본인은 택배 시킨 적 없다며 옆집을 알려주었습니다. 주소를 잘못 쓸 수도 있지 하며 가려는데 그분 말이 몇 번째 이런 식인데 얘기를 좀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봤더니 옆 집에서 아기가 택배 수령 시 잠에서 깰까 봐 이 집을 택배보관함처럼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이 집의 동의 없이. 한마디로 일부러 주소를 틀리게 쓴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기사님에게 현관 앞에 조용히 두고 가달라고 얘기를 하면 될 것을 왜 엄한 남의 집에 피해를 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베테랑 기사님에 의욕 넘치는(?) 조수까지 있었음에도 1시가 다 되도록 절반도 배달을 못했고 밥 먹을 시간 없이 바쁘다는 기사님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그날 역시 점심은 건너뛰었고 한 고객분이 고생한다고 주신 떡으로 요기를 했습니다. 깔끔하게 저녁 때쯤 택배 배송을 끝마치고 기사님에게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했던 제 계획은 저녁 7시가 되도록 남은 수많은 택배 상자에 의해 산산조각 났고 끝까지 함께 못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기사님과의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육담당자에게 연락을 해서 택배 배송 경험은 오늘 하루로 충분한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저의 택배 기사 체험은 끝이 났습니다. 분명 그날 하루가 기사님에게 특별히 힘들었던 날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매일 이런 일과를 소화하는 기사님의 모습을 보고 택배에 조급해하고 왜 미리 연락을 주지 않았는지 불평하던 제가 조금은 부끄러워졌습니다. 물론 열악하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것을 소홀히 하는 택배기사님들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본인의 환경 내에서 최선의 서비스를 하려 노력하는 기사님들이 대단해 보였고 그날 이후 택배 전화는 무조건 받으려고 하고 최소한 문자로 답을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직접 수령하는 택배의 경우 택배기사님들께 작은 간식이라도 꼭 드리려고 준비를 해놓습니다. 

배송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나라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택배 기사님들의 처우가 개선되면 배송 서비스도 자연히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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