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지난 3개월여간 치열하게 사느라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난 브런치북의 후속편이자 처음으로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를 씁니다.
"일단... 나라도 입을 줄여볼게"
어렵게 꺼낸 내 말 한마디에 회의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죽지 않을 만큼만 돌아가는 디저트 사업. 그 희망고문 속에서 회사는 말라가고 있었다.
하나 있던 직원마저 내보내고, 동료들도 각자 생업을 찾아 떠났다.
남은 건 우리 셋뿐. 사무실을 빼고 공유 오피스로 가자, 집기를 팔자 온갖 생존 전략이 오갔지만 결국 고정비를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였다.
한 명이라도 회사 돈을 쓰지 않는 것.
그날부터 나는 이력서를 돌렸고, 운 좋게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덩그러니 남겨질 두 동료의 얼굴이 밟혔다.
'내가 편하자고 도망치는 건 아닐까'
그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나는 워라밸이 좋고 업무 시간이 유연한 직장을 골랐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남는 시간은 무조건 사업을 위해 쓰겠다고.
그때부터 나의 기묘한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내일 팝업 철거 있는데 백화점이 아니라 몰이라서 밤 10시에 끝나. 새벽 철수해야 하는데... 너 다음날 출근 괜찮겠어?"
"점심시간에 엎드려 자면 돼. 괜찮아"
"이번 주말에 알바가 안 구해져서 셋 다 풀타임 뛰어야 할 것 같아"
"몸 쓰는 건 자신 있잖아. 쉴 틈 없이 돌리자. 괜찮아"
입버릇처럼 "괜찮아"를 달고 살았지만, 몸은 정직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보고서를 쓰다가, 밤이 되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매대를 날랐다.
주말에는 백화점에서 다리가 퉁퉁 붓도록 디저트를 팔았다.
직장인의 삶에 망해가는 사업가의 삶이 고스란히 얹혀진 나날들.
내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지독하게 피곤한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포기하고 싶었다.
퇴근하면 동료들과 맥주나 한잔하고, 주말엔 늦잠을 자는 평범한 삶.
그 평범함이 주는 안락함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하지만 핏기 없는 얼굴로 어떻게든 사업을 살려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두 동료를 두고 차마 "나 이제 그만할래"라는 말을 뱉을 수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피곤에 절어 퇴근길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 졸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로 날카로운 벨 소리가 파고들었다. 동료였다.
"여보세요..."
비몽사몽 간에 받은 전화기 너머로,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가 뚫고 들어왔다.
"혹시 두바이 쫀득 쿠키라고 알아?"
"어... 언뜻 인스타에서 본 것 같은데... 왜?"
"요즘 그게 유행이라는데, 백화점에서 우리한테 빨리 만들어서 팝업 해보자고 제안이 왔어"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다. 짜증 섞인 피로감 때문이었다.
"그거 만드는 공정도 복잡할 텐데... 진짜 인기가 있을까? 또 반짝하고 마는 거 아니야?"
"아직 알 순 없지... 근데 지금 팝업 하는 업체는 매일 5시면 매진이 된대"
"기억 안 나? 수건빵, 스팀식빵, 컵빙수... 우리 백화점 제안받고 급하게 들어갔다가 재고만 쌓여서 폐기한 게 얼마야. 또 늦게 들어가서 설거지만 하고 끝날 수도 있어"
나도 모르게 날 선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수건빵의 실패, 스팀식빵의 악몽...
유행을 좇다가 처참하게 말아먹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엇보다 나는 지쳐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할 에너지가, 또다시 실패를 감당할 멘탈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예민함을 느꼈는지 동료는 잠시 침묵하더니 작게 말했다.
"알았어. 일단 조금만 더 고민해보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전화가 끊어졌다. 까만 액정 위에 비친 내 얼굴은 지독히도 푸석해 보였다.
지하철 창밖으로 한강의 야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방금 쏟아낸 부정적인 말들의 진짜 이유를.
나는 '답이 보이지 않는 사업'과 '안정적인 월급'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이미 마음은 기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꽂히는 월급의 마약 같은 안정감.
이대로 그냥 회사에 안주하고 싶다는 유혹.
그 달콤함이 '두바이 쫀득 쿠키'라는 새로운 고생길을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그냥... 이렇게 월급 따박따박 받으면서 편하게 살면 안 될까?'
하지만 나는 몰랐다. 내가 귀찮아서, 혹은 두려워서 밀어내려 했던 그 전화 한 통이 어쩌면 우리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꿀 수도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