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12월은 마을 동계 시기입니다.
동계(洞契, 대동계)는 마을 사람들이 지난해의 마을 살림을 정산하고
다음 해의 일들에 대해 의논하고 결정하는 모임입니다.
다음 이장 등 각종 '장'도 선출하고요.
동계 시기가 지난 다음 한두 달 동안은
여기저기서 귀농인 험담이 들리곤 합니다.
차마 대놓고 싸우지는 못하셨어도 마음에 맺힌 얘기들을 하시는 겁니다.
시골에 가니 텃세가 있더라는 얘기는 많이 보여도
시골 사람들이 귀농인에게 상처받았다는 얘기는 안 보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 사람들, 원주민들이 거의 노인들이셔서
그분들이 SNS를 하시지도 않고
마을 내부 일이라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면 외부에 얘기도 잘 안 하시니
거의 알려지지 않는 얘기입니다.
도시의 이 아파트에서 저 아파트로 이사 가면
가자마자 반상회에 참석해서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한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면 터줏대감 소리도 들을 수 있지요.
하지만 시골은 다릅니다.
마을 생긴 것이 보통 백 년이 넘고
원주민 노인들만 따져도 그 마을에서 칠팔십 년 넘게 사셨는데
온 지 겨우 이삼 년밖에 안 된 귀농인이
나도 오래 산 마을 사람이라며 회의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여러분이 이 상황이라면 기분이 어떨 것 같으십니까?
시골을, 마을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이런저런 지적부터 해대는 것은
시골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이고,
노인들의 역사와 삶을 부정하는 무례함으로
가르치려 드는 건방진 태도로 보아 몹시 불쾌해 하십니다.
시골 문화가 시대에 맞지 못하고 불합리한 것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골이 이렇게 될 동안은 어디서 뭘 하다가
불쑥 나타나서 혁명 전사가 되려는 건지,
왜 꼭 자신들이 개혁의 선봉장이 되어야 해서 그리 급하게
노인들의 삶을 뒤집으라고 위협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다 시대가 이렇게 되어 귀농인, 귀촌인이라 이름 붙고
귀농인을 유치한다, 지원한다 어쩐다 하니
자기들이 무슨 시골을 바꿀 역사적 사명이라도 받은 줄 아는 모양인데
우리는 그냥 이사 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정, 어떤 이유가 있건
본인이 시골에 살고 싶어서 이사 왔으니
먼저 시골을 이해하고, 마을에 스며들 노력부터 하고
그런 후에 변화든 개혁이든 '함께' 해야 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자 이장, 귀농인 이장이 뉴스거리였지만
지금은 많은 마을이 그런 이장을 뽑습니다.
노인들이 돌아가시면서 마을 인구가 줄다 보니
남은 노인들도 자연스럽게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십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변화는 자연스럽게 올 수밖에 없는데
굳이 원주민들 마음에 상처 주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