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쉼

“정원은 누구의 잘못도 묻지 않아요. 다만 그 자리에 함께 머물 뿐이죠"

by 묻잎

그녀는,
모두가 아는 얼굴이었어요.
이름은 몰라도, 누구나 그녀를 알고 있었죠.


어느 날,
세상은 그녀가 ‘무언가 잘못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정작,
그게 어떤 잘못이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죠.


그럼에도
세상은 그녀에게 ‘사과’를 요구했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지만,
누군가는 ‘진심이 없다’고 했고,
비난은 화살처럼 쏟아졌어요.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들,
점 하나 없이 숨도 없이 달려드는 단어들,
도려내듯 날카로운 여백들이
그녀의 마음 어딘가를 무너뜨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혼잣말로 속삭였죠.

“나조차도 나를 용서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해...”


그녀는 도망쳤어요.
자신만의 쉼터를 찾아,
멀고 낯선, 누구의 감정도 닿지 않는 곳으로.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름 없는 작은 카페에 도착했어요.


낮에는 조용히 커피를 내렸고,
밤에는 겨우 몸을 눕힐 수 있는 조그마한 방에서
하루를 조심스럽게 접었죠.


그 공간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미약하게라도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창문 너머로 무언가가 들이닥쳤어요.


침묵을 뚫고 들어오는 기척.
먹구름에서 내려온 천둥.
그건 마음을 무너뜨리는 소용돌이였어요.


그녀는
말할 수 없었고,
머무를 곳도 사라졌어요.


그래서—
침묵만이 허락된,
마지막 남은 공간을 향해
천천히 발을 옮겼어요.


그때, 묻잎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묻잎일은
어딘가 균열 난 감정을 감지했고,


묻잎이는
무거운 떨림의 진원지를 따라
작은 잎을 말아 바람을 탔어요.


묻잎삼은
아무 말 없이
묻잎사의 손을 꼭 잡았죠.


그리고 그 작은 손으로
그녀가 향하는 길에
작은 정원을 하나 만들었어요.


그녀의 마음이 조용히 문을 두드리자,
정원은
아무 말 없이
‘머무름’을 준비했어요.


묻잎이들은,
그 떨림을 이미 오래전부터 느끼고 있었죠.


묻잎이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듯 고개를 끄덕였어요.
말은 없었지만,
흐름은 충분했어요.


묻잎일은
풀잎 위를 조심스럽게 타고 올라가
작은 렌즈 조각을 꺼냈어요.


“햇살이 너무 강하면, 감정이 더 숨으니까요…”

혼잣말처럼 중얼이며
빛이 퍼지는 각도를
부드럽게 조절했죠.

작은 몸짓이었지만, 정성은 깊었어요.


묻잎이는
그녀의 옷자락 근처에
조심스럽게 몸을 말고 앉았어요.


그리고 아주 낮게,
“여긴… 따뜻하게 해 줄게요.”


그 순간부터
바닥의 온도가
조금씩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손끝이
조금 덜 떨렸어요.


묻잎삼은
조용히 한쪽에 앉아
감정의 파동을 느끼고 있었어요.


“이건…
사과 이후에도 남은 감정이야.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감정…”


그는
작은 수첩에
짧은 문장 하나를 적었어요.
말보다 기록이 익숙한 아이였죠.


묻잎사는
조용히 다가와
하나의 나뭇잎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어요.


그건 ‘죄책감’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백이었어요.


누구도
그 여백을 지우려 하지 않았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어요.


그녀가
마침내 스스로
그 감정 위에 앉을 수 있도록요.


그녀는
천천히 그 자리에 앉았고,
묻잎이들은
주위를 둘러앉았어요.


소리도 없이,
조금씩 호흡을 맞추며요.


묻잎일은
빛 조절을 멈춘 채
그저 바라보았고,


묻잎이는
살짝 기대어
작은 온기를 남겼어요.


묻잎삼은
잔물결을 눕혀
감정의 진동을 가라앉혔고,


묻잎사는
손을 모은 채
깊은 고요 속에 시선을 머물렀어요.


그건,
말보다 더 깊은 감응이었어요.


정원은 그대로였지만,
그녀의 숨은
처음으로,
조금 더 길어졌어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딘가의 떨림이 아주 조금… 잦아들었고,
묻잎이들은 그걸
바람 속에서 조용히 읽었어요.


그 자리에 남은 건,
잠깐의 쉼이었어요.


그리고, 말없이 피어난
아주 조용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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