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말보다 오래 머물기도 해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날카로웠어요.
다섯 번째 설명이 끝났을 즈음, 그녀는 메모지 위에 여섯 번째 ‘죄송합니다’를 적고 있었죠.
말은 침착했지만, 손끝이 떨렸어요.
사소한 떨림은 기류처럼 번졌고—
“당신, 지금 장난해요?”
상대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어요.
단어 하나하나가 갈라진 유리처럼 날아들었죠.
“사람 말 못 알아들어요? 똑같이 말하게 만들어놓고,
뭘 잘했다고 죄송하다 그래!”
그쯤 되면, 대화가 아니라 공격이었어요.
그녀는 자동으로 교육받은 대사를 꺼냈죠.
“고객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됐고, 너 이름 대. 책임자 바꿔. 오늘 이거 다 녹음했어.”
숨이 얕아졌고,
말은 끊겼고,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구조 안에서,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떨궜어요.
그때, 책상 아래서
작은 ‘덜컹’ 소리와 함께 묻잎일이 조심스럽게 나타났어요.
양손을 입에 오므리며 속삭였죠.
“흐름이 깨지고 있어… 우리가, 잠깐 나눠볼까?”
묻잎삼은 손바닥만 한 유리 돔을 꺼내 들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선 위에 ‘툭’ 하고 올려놓았죠.
그 순간, 그녀의 이어폰 속 목소리가
스르륵— 바람 빠지는 소리처럼 잦아들었어요.
완전히 끊기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막이 둘 사이를 감쌌어요.
“이제, 이쪽 숨 먼저 받아요.”
묻잎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가슴팍으로 조용히 작은 파동이 스며들었어요.
그녀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어요.
방금 전의 언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말 끝에 숨어 있던 어떤 숨결이 느껴졌어요.
분노 뒤에 얽힌 불안,
욕설 안에 갇혀 있던 외로움.
그녀는 메모지에 처음으로 아무 말도 적지 않았어요.
대신, 말하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렸죠.
‘이 분도 어쩌면…’
고개를 들자, 묻잎사가 조용히 다가와
책상 위에 작은 조개껍데기 하나를 놓고 갔어요.
그 안에는 바람처럼 속삭이듯,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가 섞여 있었죠.
그녀는 메모창을 한참 바라보다가
정확히 무슨 말을 남긴 건지도 모른 채
조용히 한 문장을 적었어요.
「잠시, 감정이 바다처럼 출렁였어요.」
그 시각, 상대방의 전화기 너머에도
아주 조그마한 반짝임 하나가 켜졌어요.
묻잎일이 그의 손등 위에 조심스럽게 빛을 내려놓으며 속삭였죠.
“이 말들, 다 잊어도 괜찮으니까요. 오늘은 감정만 남겨도 돼요.”
그의 모래사장에는
‘죄송합니다’도, ‘내가 잘못했습니다’도 없었어요.
다만—
「…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정신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게 해서 화가 났고, 아무 데나 퍼부었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내가 소리 질렀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그 얼굴이… 너무 지쳐 보였어요.
그게 내 탓이라는 게, 참…」
그 문장은 끝맺지 못한 채
파도처럼, 감정은 스쳐갔어요.
그의 돔 앞에도
누군가 조심히 찍고 간 발자국이 있었고—
묻잎삼은 그 흔적을 작은 씨앗 하나에 담았어요.
그리고 유리 주머니 안에 넣어,
상담사의 책상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어요.
“이 씨앗은, 다시 꺼내도 괜찮아요.
오늘 아니면 내일, 다음 주라도요.”
그녀는 조용히 그것을 바라보았어요.
모니터에는 아직 ‘업무 재개’ 버튼이 떠 있었지만,
그 버튼은 눌러지지 않았어요.
묻잎이들은 조용히 뒷걸음질 쳤어요.
일은 끝났고, 감정은 아직 남아 있었죠.
하지만 이제는
‘없애야 한다’는 압박도,
‘괜찮은 척’ 해야 한다는 의무도
조금은 옅어졌어요.
그녀는 다시 숨을 들이쉬었어요.
이번에는 천천히.
말은 사라졌지만,
그 사이엔 여전히 숨이 남아 있었어요.
묻잎일이 먼저 돌아섰어요.
작은 후레쉬를 가슴에 안듯 들고,
조심스레 물러났죠.
“쉿… 지금은 그냥, 멈춰도 돼요.”
묻잎이와 묻잎삼은
돔 사이를 걸으며 경계선을 걷어냈어요.
손끝이 닿을 때마다
감정의 파편이 모래처럼 흩어졌고—
묻잎삼은 바닥을 조용히 쓸며
조각들을 유리병에 담았어요.
마지막으로 남은 묻잎사는
둘을 바라보다가 속삭였어요.
“숨은… 말보다 오래 남기도 해요.
그걸 알아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오늘은 조금 덜 외로울 수 있어요.”
그 말 뒤,
묻잎이들은 상담사도, 고객도 보지 못한 방향으로
조용한 발걸음을 남기며 사라졌어요.
남은 건, 두 개의 조용한 돔.
그 안에서 이제는 닿지 않는 말들이
작은 숨처럼 흔들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아주 작은…
회복의 흔적이
그 안에 씨앗처럼 남아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