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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도 친밀한 이곳

입주 스튜디오와 마주하며

by Lizzy Moon

늘 기다렸던,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금은 걱정했었던 대만 타이베이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무사히 레지던시에 도착해서 스튜디오키를 받았다. 담당자는 내게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 볼 것을 권했고, 아마도 어떤 감각 그리고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 배려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고마웠다. 이곳에 여러 번 방문했었지만, 스튜디오를 받는 것은 또 처음이라 무척 신기하고 또 새로웠다. 지나가며 길 위에서 바라만 보던 스튜디오를 우선 배정받았는데, 이 스튜디는 이곳의 오리지널리티- 40여 년 전에 지어진 오래된 대만의 집을 그대로 개보수하여 활용하고 있는 공간이다.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면, 오래되고 낡았으며 깔끔하고 청결한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스튜디오라는 이야기. 나는 이 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게 아주 다정한 태도로, 비교적 깔끔한 스튜디오는 3월 첫 주부터 사용하게 될 것이며 그 전엔 조금 오래된 스튜디오를 배정해 줄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할 때 이미 각오했던 바. 이미 상상했고, 그렇지만 도착해서 공간을 체크하며 솔직히 잠시 멈칫했지만 어쩌면 이보다 더 특별한 공간에서 머물 수 있는 기회는 인생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견뎌야 한다...!


그랬다, 그 당시의 나는 모든 것이 괜.찮.았.었.다

하지만 공간 설명을 마친 스태프들이 떠나고 남은 자리에서 나는 잠시, 멍- 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곳에서 한 달 동안 생활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엔 나는 무척 세련된 도시 여자였던 것이었다. 좋든 싫든 나는 이곳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걸스카우트 캠핑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생의 겨우 두달인걸, 뭐 어때! 그렇게 애써 괜찮은 척 마음을 다잡으며, 장바구니를 챙겨 호기롭게 마트로 향했다. 이곳에서의 모든 것은 아티스트가 챙겨야만 하기 때문에 청소부터 빨래까지, 필요한 모든 것들은 직접 구비해야만 했다. 화장실 휴지, 세탁 세제, 샴푸, 수건... 한국에서 챙겨 온 것들이 있는 품목들도 있긴 했지만, 여행자의 태도로 준비한 것과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내가 머무는 이곳은,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굉장히 많이 닮아 있다. 언덕 위에 지어진 좁고 가파른 계단들을 오르고 또 내려야만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있다. 어떤 길은 연결되어 있고, 또 어떤 길은 이상하게도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꽤 긴 길을 돌아서 가야만 한다. 또 어떤 길은 막다른 벽으로 막혀있기도 하다. 길 감각이 꽤 훌륭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길을 잃었다. 빨래방은 무척 막다른 골목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그곳의 입구를 계속 놓치고 지나간다. 이곳의 쓰레기 또한 지정 포인트에 버릴 수 있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곳들은 모두 다 잊어버렸고,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 곳에만 계속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 아마도 이곳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그럴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빨래를 하러 가기 위해 길고 좁고 가파른 길들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빨래방에 도착한다. 3대의 세탁기 중에 어떤 세탁기가 가장 깨끗할까? 나는 첫날 오자마자 세탁기의 위생에 대해 고민했다. 무척 한국인스러운 생각이기도 했다. 며칠 뒤, 나는 빨래를 하고 무척 놀라고 말았는데, 세탁기의 필터를 청소하지 않아 세탁조의 찌꺼기가 모두 내 옷들과 수건들에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깊은 한숨과 함께, 다시 한번 세척을 했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솔직히 없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힘껏 내려치고 탈탈 털어내며 그 먼지들을 떨어뜨리고 건조기에 던져 넣으며 이곳의 현실과 마주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코인 빨래방을 검색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나의 친구이자 애정하는 동료에게 컴플레인 레터를 작성하는 편으로 마음을 바꿨다.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무척 마음에 들어. 다시 한번, 나를 초대해 줘서 고마워. 레지던시의 오픈콜 시즌1은 3월부터 시작되는데, 나의 스케줄을 이해해 주고 또 미리 초대해 준 것에 대해 무척 감사해. 그런데 요청할 것이 하나 있어. 아마 아직 모든 아티스트들이 도착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 같은데, 세탁기에 문제가 좀 있어. 세탁기 필터 청소가 필요해 보여. 빨래를 해 봤는데 섬유 먼지가 아닌 세탁기에서 나오는 찌꺼기들이 내 옷들에 달라붙은 채 빨래가 되어 무척 곤혹스러웠어. 이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줄 수 있을까? 그리고 혹시, 여분의 베개 커버를 요청할 수 있니?"


그녀는 무척 당황하고 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났고 세탁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웃으며 "담당자 말로는, 우리 레지던시에 입주한 아티스트 중에서 세탁기 필터 청소건에 대해 건의한 건 리지 네가 처음이래. 아마 리지는 살림을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단 생각을 했어. 우린 오늘 오전에 필터를 청소했고, 리지가 곧 빨래를 하러 왔으면 해. 그리고 부탁했던, 베개 커버 여유분에 대해서는 무척 미안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아티스트에게 하나의 베개 커버와 이불커버, 매트리스 커버를 제공해." 우리는 이 이야기를 하며 무척 깔깔 웃었다. 어떤 예술가도 잠자는 것에 대해 이렇게까지 예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특성이 결국은 드러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덤 한 듯 예민한 나의 성격이 결국은 들켜버린 것 같아서 조금은 민망한 순간이기도 했다.


한주가 지난 지금은 무척 익숙해졌다. 안 되는 것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 그렇다면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익숙한 나는 차선을 택했다. 이불 커버를 교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한 나는 이곳에서 침낭을 구매해 버렸다. 교체할 베개 커버는, 이곳에서 제공해 준 수건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조금 맘에 들지 않거나,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런 삶을 사는 것에 익숙해지려 무-척 노력하고 있다.



My long-awaited yet slightly nerve-wracking life in Taipei has begun. I arrived safely at the residency, received my studio key, and stepped into my assigned space—an old but charming house built 40 years ago. Though not pristine, I reminded myself this was a rare and special experience.


At first, I convinced myself everything was fine. But as soon as the staff left, reality hit—I was a city girl adjusting to a much simpler life. I decided to embrace it like a Girl Scout camping trip. With that, I grabbed my bag and headed to the market, realizing I had to handle everything myself—cleaning, laundry, and daily essentials.


Navigating the steep, narrow streets felt like a puzzle. I frequently got lost, missed the laundromat entrance, and kept using the only trash disposal point I could remember. When I finally did laundry, I was horrified to find my clothes covered in residue from an unclean filter. Instead of searching for another laundromat, I wrote a polite complaint.


My friend laughed, saying, "You’re the first artist to ever bring this up!" They cleaned the filters the next morning, but extra bedding wasn’t an option. Instead, I bought a sleeping bag and used a towel as a pillowcase.


A week in, I’ve learned to adapt. Rather than fixating on imperfections, I’m finding ways to adjust. And honestly? I think I’m getting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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