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재학중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의 수업
대만의 어린이날은 4월 4일. 보통 4월 1일에는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한국에선 이벤트성 일과가 있을 경우엔 보통 40분 특별활동 10분 쉬는 시간으로 구성하는데 대만은 재미있게도 " 40분 쉬는 시간 그리고 10분 수업"으로 평소의 학과 일정시간과 변경되어 진행된다고 한다. 발상이 참 재미나지 않은가.
우리는 함께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했고, 관련된 교육 서류까지 모두 꾸려서 완성했다. 교장선생님도 수업을 해달라고 요구하셔서 큰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교육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외국인 교사의 경우엔 이벤트성 수업을 단독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것. 근무 중인 교사와 팀을 이뤄서 수업을 하는 것은 괜찮다는 지침이었다. 이미 교사들은 모두 각자가 맡은 수업이나 이벤트가 배정되어 있는 상황이라 우리는 조금 망설였다. 그러다 은퇴하신 선생님께서 재미난 의견을 주셨다.
"그러면~ 초등학교에 다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셔. 그분들의 수업을 나랑 같이 하자! 나는 교직이 있는데 퇴직을 해서 수업시간에 들어갈 순 없지만, 어른들의 수업은 조금 다른 경우라 내가 수업을 한다고 하면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을 거야. 나 여기서 23년을 근무했다구!“
Pan 선생님은 내게 경험을, 다양한 교육 환경과 사람들을 마주하며 느끼는 교육 현장의 감각들을 갖고 가길 바라고 응원해 주시는 분이시다. 가끔은 옆집 할아버지 같기도 하고, 친구 같기도 하고, 동료 같기도 한 선생님과 알고 지낸 지 이제 겨우 10일 남짓이지만 나는 그의 다정한 마음을 이해한다.
그렇게 우리는 팀을 이뤘고, 어른들을 위한 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어린이날 행사가 한창인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신이 난 표정과 행동들로 학교를 누비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꼬마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학교 입구에서 만난 우리는 함께 학교를 산책하며 자연물들을 확인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학교 교정엔 안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방울들을 한껏 머금어낸 꽃들과 나무들이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오늘 날씨만 좋았다면 가장 튼튼하고 키가 큰 나무에 끈을 매달아 클라이밍 체험을 하려고 했었다는 담당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곳의 교육 프로그램들이 무척 재밌다고 생각했다. 한국이라면 조금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도 그들에겐 삶을 살아가는 방향에서 필요한 것이라 믿는다면 시도해야만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정원을 가꾸고 그곳에서 얻은 재료들로 요리를 하고, 못질을 하거나 톱날을 세워 원하는 형태로 나무를 자르고 다듬는 것이 자연스럽다. 보트를 만들어 직접 근처 강가에 가서 보트의 안전성을 테스트하고 보트대회를 여는 것은 이 학교의 시그니처 이벤트라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철의 초등학교 수업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납땜을 하기 위해 인두를 사용하고, 설거지를 배우고, 단추나 구멍 난 양말을 꿰매던 그때의 수업 환경들이 생각났다. 그때의 우리는 조금 더 어린이스러운, 좀 더 엉뚱한 행동들을 학교에서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로 인해 얻는 경험들과 깨달음들이 바탕이 되어 성장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돌아와서, 어린 시절 어르신들의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지만 여유가 생긴 지금 학교에 다니며 새로움을 탐구하고 앎에 대한 진지한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멋진 분들을 마주했다. "니하오", 나는 수줍게 인사를 건넸는데, 어른들은 환하게 웃으시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답해 주시며, 아름다운 한국 예술가가 우리의 교실에 왔다! 라며 반겨주셨다. 20여 명의 어르신들은 무척 다정하셨고, 그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내게 이야기를 건네오는 할머니부터 소극적이지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내려 애쓰는 어른 그리고 실패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어른, 늦더라도 완성해 내려는 어른.. 너무나도 학교 교실에서 마주하는 아이들과 닮은 어른들의 모습을 만났다. 그 순간 평생 변하지 않는 나의 기질과 내면을 어떻게 하면 좀 더 단단하게 다듬어내며 스스로 상처보단 위로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근사한 어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게 삶이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쉽지 않지만 그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람을 마주하고 주어진 과제에 충실하며 후회보다는 앞을 향해서 계속 나아가는 힘을 잃지 않으려면 주변에 좋은 친구들과 믿음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안내해 주셨다.
나는 나의 미래를 잠시 옅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