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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Aug 16. 2023

평가하는 마음 1

나는 나약해.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없어.


욕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올라오지만, 파고 들어가면 종류는 그렇게까지 다양하지 않다.

당시 나는 내가 생긴대로 이해받고 싶은 마음(욕구)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또다시 답답해졌다.

그 욕구는 어떻게 충족시키지? 내 주위 사람들은 날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데. 세상엔 늘 내가 잘난 점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하는데. 모자란 대로 당당하게 살 용기도 없고. 남들이 무시해도 상처받지 않을 용기도 없고. 이해받을 때까지 버틸 자신도 없는데.


지금에서야 내가 뒤늦게 알게 된 욕구에 대한 진실은, 나의 욕구는 어느정도 '내'가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긴대로 이해받고 싶은 욕구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으면 하는 내면의 메세지이다. 그러니 당시의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절대 절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심리상담을 받을 당시, 나는 내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았기에, 가족 문제와 더불어 내가 왜 유학을 가고 싶은지, '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 많이 물었다.


처음엔 그게 나랑 잘 맞을 것 같아서. 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게 재밌고, 심리상담은 특히 내가 더 잘 해낼 수 있는 분야라고 느껴졌고, 그 일은 전문직이 될 것이기에 내 성향과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고, 개방적인 사람들을 만나기 쉬울 것이란 것도, 해외에 나가면 위계질서가 뚜렷한 한국의 문화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것 등등...


상담선생님은 내게 "만약 미국에 나갔는데 연구실이 한국만큼 위계질서가 뚜렷하다면 어떨 것 같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렴 한국보다는 나을 걸요. 힘들어도 이미 갔으니 버텨야죠 뭐. 하는 식으로 넘기고 싶어했다.


선생님은 다음으로 "만약 한국에 있는 대학원에 가게 되면 어떨 것 같나요?" 라고 물으셨다. 연구실 내부에서 나의 학력이나 출신 지역으로, 성별로 인해 차별을 받는 다면 어떨 것 같은지. 나는 반항적인 성향이 있는 것에 비해 늘 갈등을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상상만 해도 답답하고 그 환경을 도망치고 싶었다.


그날의 주제는 한국과 미국 중 어느 환경이 더 평등하고 개방적인지를 논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구체적인 사건과 나의 반응을 내가 되돌아보며 나의 핵심적인 아픔, 그리고 오래된 사고 관념을 내 스스로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간절하게, 무리해서 미국으로 가고 싶어했을까? 해외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는 몇몇 사람들의 당차고 행복해보이는 평가들을 동앗줄처럼 바라보며 나를 채찍질했던 이유는.


지방에서, 이러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내가 너무나 하찮고 못나 보였기 때문이었다.

흥미와 관심과 사랑으로 내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게 아니라, 나는 날 감싸고 있는 못난 외피들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의 대학원 학위가 나의 삶을 알아서 건져올려 주기를. 양지 바른 곳에 나를 놓아주기를 바랐다.


우리에겐 정말 그런 간절함들이 있다.

이 대학에 가면 내 인생은 탄탄대로 일 것이다. 가수로 데뷔를 하면. 고시에 붙으면. 원하는 기업에 들어가면. 마음에 드는 사람과 연애를 하면 난 외롭지 않을 것이다. 부자와 결혼을 하면. 부모가 되면.

좋은 집에 산다면 나는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차를 산다면. 다이어트를 성공한다면. 성형수술을 한다면.


이 마음이 얼마나 크고 거대한 지. 어찌보면 인생에 거대한 성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하찮고 초라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아 고군분투해왔다. 사실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늘 평가를 신경쓰며 미래를 생각하며 살았다.


내 머리 속에 펼쳐진 사회의 평가, 타인의 평가는 나를 향한 나의 평가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기준에 미달된 부끄러운 존재였다. 때로는 허영과 허세로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도 했다. 외부의 기준에 나는 맞춰가야만 하는 사람. 외부가 내게 너그러워지지 않으면 나도 나에게 너그러워질 수 없었던 사람. 이런 내가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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