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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Aug 16. 2023

원망하는 마음

20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서 4


나는 세상과 환경에 대한 원망이 큰 사람이었다. 내가 보기 싫은 사람이 된 건 부모님이 날 잘못 키워서야. 내가 성공하지 못한 건 우리집이 가난해서야. 가족들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줘서야. 이 세상이 불평등해서야.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야 등등.


세상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유용한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유용하려면, 이 관점이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데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게 이런 관점들은 나의 우울과 고통을 더 강화시키는 역할만 했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로 나름 사회활동을 하기도 했다. 나의 작은 참여가 이 세상을 좀 더 평등한 곳으로 만들기를 바라며 실천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동은 일시적으로 나에게 희망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내가 성숙한 사람이 된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고, 뉴스에서 부정적인 기사를 접할 때면 마음은 금세 또 의욕을 잃었다.


내 삶의 고통이 바깥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모든 탓을 나에게 돌리지 않아도 된다. 그건 좋은 일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실패와 좌절을 책임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의 지휘권이 내가 아닌, 쉽게 바꿀 수 없는 사회구조나 이미 결정된 부모나 가정환경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힘을 잃는다.


무슨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주변 사람들을 바꿔보려고, 혹은 통제하려고, 화를 내고 그들에게 수많은 요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주인은 그 사람들이다. 나의 주인이 나인 것처럼. 절대 내 마음대로 바뀌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휘둘러져서도 안 된다.


제일 중요한 건, 원인을 외부에 두기 시작하면, 외부에만 에너지를 쏟게 되고, 외부에 것들만 분석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나는 나와 점점 멀어진다. 내 마음, 내 감정, 내 욕구를 전혀 들여다보지 못 하게 된다. 내가 행복한지, 불편한지, 살만한지에 대한 기준은 내가 되어야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말을 예쁘게 하는지, 내 직장동료가 내게 얼마나 무례한지, 오늘 살인사건이 일어났는지 일어나지 않았는지로 결정이 나게 된다.


상담을 받을 때는 몰랐다. 나는 책에서 본 지식, 강의에서 배운 지식들을 내세워 내 감정엔 합당한 구조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바라는 게 많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바라는 게 많았다. 나는 그게 내 욕구라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걸 전달할 수 없어서 내가 불행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진짜' 내 욕구였을까?


나의 욕구는 온전히 '나'와 관련된다. 욕구는 갓난 아이 때부터 존재한다. 그러니 미숙하고 원초적이다. 처음엔 그게 싫었다. 우리 마음은 모두가 다 미숙하고 본능적인데, 모두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니 그것을 인정하는 게 힘든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아주아주 별 거 아닌 것만 같은, 그리고 약간은 본능적인 듯한 나의 욕구를 알아준다는 의미와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잠시 외부에 대한 많은 불평을 멈추어야 한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존재하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네가 원래 바라는 건 무엇이었어?


나에겐 언제나 늘, '내가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있는 그대로 이해받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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