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누군지도 모르는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루나가 눈을 떴다. 이곳은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반사하는,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없이 많은 스크린들이 하늘에 떠 있었고, 끊임없이 문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루나는 그 문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임을 금방 깨달았다. 하지만 그 마음들은 대개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안에 담긴 말들은 날카롭고 차가웠으며, 종종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루나는 스크린 앞에 한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스크린 앞에 주저앉아 있었고,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스크린에는 수많은 악플들이 달려 있었고, 하나같이 그녀를 비난하고 있었다.
"넌 왜 그렇게 생긴 거야?", "차라리 사라져버려", "너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필요 없어" 같은 말들이 여자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처럼 꽂힌다.
루나는 그 여자가 왜 그렇게 상처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여자의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그만 울어. 대체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거야?"
여자는 눈물을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이... 나를 너무 미워해요. 내가 올린 글마다, 내가 하는 행동마다 비난과 악플이 달려요. 도저히 견딜 수 없어요."
루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너를 알지도 못하잖아. 그저 너와 아무 상관없는 남들이 하는 말일 뿐이잖아. 굳이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이라면 너를 잘 알지도 못하는 익명의 존재들일 텐데, 왜 그들의 말에 휘둘리는 거지? 자신의 말이 남을 상처입힐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머저리들의 말을 듣고 상처를 받는다니 이해하기 어렵네."
여자는 눈물을 닦고 루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들이 너무 아파요. 나는 그저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미움을 받는지 모르겠어요."
루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생각해봐. 그 사람들은 너를 전혀 몰라. 그저 익명 뒤에 숨어서 남을 공격하는 것이지. 그들은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어쩌면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일지도 몰라. 그런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건 네가 스스로에게 불공평한 거야. 실제로 보지도 못하고 음습하게 뒤에서 남을 씹는 사람들의 의견따위 뭐가 중요하겠어."
여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루나의 말을 곱씹는 듯 보였다.
"그래도... 그들의 말은 현실이잖아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미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워요."
루나는 이 세계의 사람들이 익명의 말에 영향을 크게 받는단 걸 알게 되었다. 그저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닌였을 사람들의 본질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말이란 허황된 권력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그렇다면 넌 왜 여기에 있지?" 루나는 물었다. "이 세상은 네게 상처만 주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곳에 머물러 있는 거야?"
여자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어요. 나도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그게 잘못된 걸까요?"
루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여자가 지금 느끼는 고통이 진짜라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루나는 인심을 써 여자에 위로를 건낸다.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 하지만 그 자격을 익명의 말로부터 얻으려고 할 필요는 없어. 그건 그저 허상일 뿐이야."
똑같은 허상의 말이었지만, 여자는 다시 눈물을 훔치며 깨달은 듯 말한다.
"알아요...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요. 말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려 해도, 자꾸만 마음이 무너져요. 실제하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루나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아무 의미 없는 말 역시 도움이 될 거란 걸 알고 말을 잇는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마.그저 화면 뒤에 숨어서 아무렇게나 말을 던질 뿐이야. 그들의 말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 같은 거야. 남의 말이 너의 가치를 결정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게 힘들다면 나처럼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지 않겠어?"
여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 말이 맞아요. 하지만 나 자신을 믿는 게 너무 어려워요.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까지 미워할 때, 나조차도 나를 미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너의 가치는 그들의 말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야. 그들이 무엇을 말하든, 그것은 너의 진짜 모습이 아니야. 너는 네 자신을 알고,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해. 남들의 말이 그 이야기를 결정하게 놔두지 마."
여자는 루나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 고통을 이겨내기에는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남들의 말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루나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상처받는 건 당연해. 누구나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느냐야. 그 상처가 너를 무너뜨리게 놔두지 말고, 오히려 너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도구로 삼아봐. 너는 그들의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고, 그 말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이미 가지고 있어."
여자는 깊은 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당신의 말이 큰 위로가 돼요. 내가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루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을 거야. 그들의 말은 그저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니까."
여자는 다시 한 번 루나를 바라보며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당신은 정말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아요... 어쩌면 그래서 내가 놓치고 있던 걸 깨닫게 해준 것 같아요."
루나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중요한 건 네가 이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야. 악플을 받는다고 해서 네가 변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네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거야."
루나는 여자의 손을 잡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또 그만큼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곳이야. 하지만 네가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너 자신을 다시 돌아봐. 네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이곳에 있는지를 기억해."
여자는 눈물을 닦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 덕분에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그들의 말에 너무 얽매이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루나는 마지막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중요한 건 네가 네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네가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너를 사랑할 수 없을 거야. 네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때,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일 거야."
루나는 여자의 옆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느꼈다. 이제 그녀는 또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또 한 번 누군가에게 작은 깨달음을 주고 떠나는 것이 그녀의 운명임을 알게 되었다.
루나는 여자를 떠나 다시 길을 떠났다. 여자는 그녀를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제 더는 스크린에 달린 악플들에 휘둘리지 않을 것 같았다. 비록 그 말들이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 그녀는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피상적인 말, 아무것도 아닌 말에 의미를 부여해 힘들어하고, 힘을 받는다니. 참으로 피곤한 세상살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