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로 차출되기 전에 시집보내라
정월 대보름이다. 엄동설한에 엄마는 갖은 나물 반찬을 만드느라 부산하다. 시래기와 말린 무 말랭이는 전날부터 바가지에 담가 놓았다. 찹쌀에 팥을 넣고 찰밥을 찌고, 쇠고기 무국을 끓였다. 우리 식구에 옆집 순이네까지 이십여 명이 둘러앉아 보름밥을 나눠 먹었다. 밥을 먹고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더위를 팔아야 한다. '순이야.'라고 불러서 냉큼 대답하기 전에 '내 더위, 니 더위.' 한여름 더위를 정월 보름에 팔고 다닌다. 저녁이면 쥐불놀이를 한다. 짚더미로 방망이처럼 만들어 불을 붙여 돌린다. 대보름달이 환하고 쥐불로 온 동네가 환해진다. 저녁에 옆동네 고모할머니가 왔다.
'자네 딸이 몇 살인가? 세상이 하도 흉흉해서 시집을 먼저 보내야지 않겠나.'
딸 가진 집들은 마음이 급해졌다. 열여섯만 먹으면 일본 군인 정신대로 차출된다는 소문이다. 옆 동네 19살 먹은 점순이가 사라졌다. 엄마도 빨리 혼처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틀 뒤에 고모할머니가 또 우리 집에 왔다.
'여보게, 남산재 너머 서수에 22살 먹은 총각이 있다네. 이리 역에 다니면서 월급쟁이를 한다네.'
'먹고사는 것은 어떤가요?'
'월급쟁이를 한다니까 먹는 것은 걱정이 없네. 다만 걸리는 게 홀시어머니에 이대 독자라 식구가 단출하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좀 더 좋은 혼처를 알아보고 싶어요.'
'이 사람아, 저번에 옆 동네 부잣집에서 사람을 보내 시복이 얼굴 보고 갔다고 안 했나. 여태까지 소식이 없는 것이 뻔하지 않나. 얼굴이 예뻐야 시집도 잘 가는 거야.'
고모할머니가 돌아가고, 엄마는 나를 불렀다.
'시복아, 서수 사는 22살짜리 혼처 자리가 들어왔다. 정신대로 차출되는 것보다는 혼인을 하는 것이 좋겠구나.'
아버지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동생들 돌보느라 고생할 일은 없겠더라. 이대 독자라고 하니 식구가 단출하다.'
엄마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이월 보름에 동네 사람들이 모였다. 혼인 말이 오가고 한 달 만에 결정된 결혼식 날이다. 엄마는 결혼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옆집 순이도 내 옆에 붙어서 잔시중을 들고 있다.
'시복아, 결혼해도 가끔 놀러 올 거지.'
'너네, 시집에 놀러 가도 될까?'
엄마는 내 얼굴에 예쁘게 화장을 해 주면서 자꾸 얼굴을 쓰다듬는다.
'시복아, 잘 살아야 한다. 꾹 참고 살다 보면 정이 들어 이게 내 집이겠거니 하면 살아진다. 남편 말 잘 듣고, 시어머니 떠 받들고 살면 예쁨 받을 것이다.'
마차를 타고 신랑이 도착했다. 신랑이 가지고 온 함 속에는 한복이랑 족두리랑 먹거리도 잔뜩이다. 한복을 입고 족두리를 올리니 꽃다운 새신부로 변했다. 결혼식이 어찌 끝났는지 경황이 없었다. 몇 번씩 절을 하고 신랑과 마주하였다. 힐끗 곁눈질로 신랑을 보니 기다란 얼굴에 입이 튀어나와 고집이 세 보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모두 모여서 점심밥을 먹었다. 신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랑 겸상을 했다. 식사가 끝나고 신혼집에 필요한 짐보따리를 마차에 실었다.
집 떠날 때 다시 한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큰절을 올렸다. 지금까지 잘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진다. 마당에서는 마차가 출발한다고 빨리 나오라고 재촉한다. 이제 내 집을 떠나면 난 시댁 귀신이 되어야 한다. 마차가 대문을 나서는데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을 꾹 붙잡았다. 엄마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느라 뒤돌아 서서 떠나는 딸을 마주 보지 못했다. 동생도 엄마 뒤에서 숨어서
'성, 잘 가. 잘살아 돼.'라고 훌쩍이며 손만 흔든다.
마차는 신작로로 한참을 달리더니 서수에 도착했다. 서수에서도 좁은 길로 한참을 들어갔다. 소나무 숲 속이 나타났다. 이런 곳에 도저히 사람 사는 집이 없을 것 같았고, 마차는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차에서 내려서 숲 속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오솔길 옆에 묘똥이 나타나 너무 무서웠다. 숲 끝자락에 외딴집이 보인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니 놀라웠다. 대문에 서서 기다리던 시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맞이한다. 어머니도 아들과 같이 얼굴이 길고 입이 튀어나와 생김새가 너무 닮았다.
'아가, 오느라고 고생 많이 했쟈.'
'어서 들어와 밥 먹자.'
두 시간이 넘게 달려왔으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시어머니는 시커먼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려 내왔다. 단 세 식구로 시어머니, 신랑, 그리고 나 셋이서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친정집에서는 밥상을 3상을 차렸다.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먹는 한 상, 할머니랑 고모가 먹는 한 상, 그리고 엄마랑 우리들 밥상 거기다가 일 봐주는 머슴과 꼬마둥이까지 족히 스무 명은 되었다. 그런데 이곳은 단 세명이다. 너무 조용하여 밥알 씹히는 소리까지 들렸다. 시어머니는 아들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아들이 맘대로 하고 버릇이 없었다.
'엄마, 반찬이 이게 뭐야? 먹을 게 없어.'
버르장머리 없이 굴어도 시어머니는 꼼짝을 못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마치 양반집 규수를 맞이하듯 깍듯하게 대하고 좋아했다.
시집온 첫날밤이 그럭저럭 지났다. 아침이 되어 시어머니, 신랑, 나 셋이서 밥을 먹었다. 너무 고요했다. 친정집 분위기와 너무 달라서 마치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어색했다. 신랑은 이리 역으로 돈 벌러 가느라 일찍 집을 나갔다. 시어머니도 밭일을 시작하느라 분주했다. 산속 외딴집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고 사방이 너무 조용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저녁이 되었다. 다음 날도 똑같았다. 시어머니, 신랑 그리고 나 셋이서 외딴집에서 이렇게 지내야 했다. 미친 듯이 친정집에 가고 싶었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란 생각이 확실해졌다. 이곳에서 신랑하고 시어머니하고 달랑 셋이서 살 수는 없었다. 친정집에는 엄마도 있고, 동생도 있고 내 친구 순이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이리 역에 돈 벌러 나가고, 시어머니도 밭에 나가고 혼자 남았다. 나는 몰래 보따리를 주섬주섬 챙겼다. 내 집으로 가야겠다. 소나무 숲 속을 지나 묘똥이 있는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남산재를 넘어 신작로가 나왔다. 마차를 타고 왔던 기억을 더듬어 두 시간이 넘게 걷다 보니 친정집 동네가 보인다.
엄마는 마치 헛것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랬다.
'시복아. 이게 웬일이니? 혼인했으면 그 집이 니 집이라 생각하고 살라고 했더니.'
'엄마, 보고 싶어서 왔다.'라고 엄마 품에 안겨서 엉엉 울었다. 안방에서 할아버지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되돌려 보내라.'
'아버님, 밥 한 끼 먹여서 바로 되돌려 보낼게요.'
엄마는 부엌에서 서둘러 밥을 했다.
'나 안가. 난 집에서 살 거야.'라고 울면서 떼를 썼다.
'너, 여기 살면 정신대에 뽑혀갈 거야. 어제도 옆 동네에서 17살짜리 끝네가 뽑혀갔대.'
동생과 순이가 나를 보더니 좋아서 반색을 한다.
'성, 어떻게 다시 왔어. 엄마가 다시는 성 볼 생각 말라고 했는데.'
내 손을 붙잡고 놓질 않는다. 순이도 나를 얼싸안고 보고 싶었다며 울었다.
엄마는 닭 한 마리를 잡아서 푸짐하게 밥상을 차렸다.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은 아무 소리 없이 밥만 먹었다. 밥상을 물리자마자 엄마는 내 손을 잡아끌고 앞장서서 걸었다. 다시 서수 시댁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난 울면서 엄마 손에 이끌려 친정집을 떠나왔다. 아침에 혼자 넘었던 남산재를 엄마 손을 붙잡고 다시 넘어서 서수집으로 갔다. 갈 때는 혼자여도 오로지 친정집에 간다는 생각에 무서운지도 몰랐다. 올 때는 친정집에 다시는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엄마 손을 붙잡고 걷는데도 서러웠다.
시어머니는 반색을 하며 우리를 맞이하였다.
'아가, 니가 없어져서 놀랬다. 저녁이 되면 돌아오겠지. 하면서도 걱정이 되더구나.'
남편은 이리 역전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엄마는 딸을 잘 부탁한다며 시어머니께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혼자 남산재를 넘어가는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졌다. 나중에 엄마는 남산재를 넘어서 집에 갈 때까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고 했다. 서수 집에 볏단 가리 하나 없이, 가난해 보이는 숲 속 외딴집에 평생을 살아야 할 딸을 생각하며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아침 밥상을 물리자 시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아가, 니 신랑이 사분사분하지 못해도 곧은 사람이다. 날 때부터 병치레를 많이 하고 약골이라, 아들이 살아있기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내가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아서, 아직 버릇이 없고 살림살이도 잘 모른다. 아가, 너랑 나랑 같이 살면서 신랑 사람 한번 만들어보자.'
내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나는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하면서 당부하는 시어머니를 보니 내가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시어머니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밭에 가면 밭에 가서 일했다. 논에 가면 논에 가서 모를 심었다. 논 한 마지기, 밭 한 떼기로 전답이 얼마 안 되어 일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한 달이 지나니 아랫동네 사는 성철네라고 내 또래 새댁이 놀러 왔다. 또래가 있으니 이야기가 통했다. 살다 보니 서수 집이 내 집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