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수영 2
"널 뒤로한 채 그냥 걸었어
미안해하는 널 위해
참아온 눈물 보이기 싫어
나 먼저 일어선 거야~"
이 노래가 나오면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인다. 맨 처음에는 무슨 노래인지 몰랐다. 리듬은 익숙했지만, 가사는 잘 들리지 않았다. 수영을 시작한 첫날부터 몇 년간 수영장 준비 체조 음악으로 이 노래를 들었다. 최근까지도 수영장 준비 체조 음악은 바뀌지 않았다. 매일 아침마다 듣게 되니 나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가사도 외우고, 가사에 맞춰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수영장이 아닌 곳에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나도 모르게 몸이 들썩들썩했다.
3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가까운 수영장에 화목토 신규반으로 수영 수업을 등록했다. 일주일에 3번, 한 달에 12번 갈 수 있는 수업으로, 수강료는 4만 원쯤 했다(구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그나마 쌌다). 화요일과 목요일은 선생님께 수영 강습을 듣고, 토요일은 자유 수영을 하는 반이라 수강료가 조금 더 저렴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오전 시간이 그나마 수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3월 한 달은 초등학교 적응 기간이라 아이가 생각보다 일찍 하교했다. 오전 10시까지 등교하고 12시에 끝나는 시간표로 1-2주 동안 적응하고, 이후에는 오전 9시까지 등교해서 4교시 수업을 듣고 급식 먹고 하교하는 일정이었다. 아무튼 12시 50분이면 무조건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려야만 했다.
수영장은 평일엔 새벽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수업이 있었다. 수업 시간은 50분. 매시간 정각에 시작해서 50분에 끝났다.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시각은 같았으나 주로 자유 수영이나 소수 정예(개인) 수업과 아쿠아 수업만 진행했고, 오후 6시에는 문을 닫았다(내가 다닌 수영장은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평일에 수영장 문 여는 시각은 새벽 5시 40분. 모든 수업은 정시에 시작하지만,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20분 전에는 입장해서 샤워실에서 깨끗이 씻고 준비해야 했다.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새벽반, 오전 8시-9시와 오후 12시-1시에는 아쿠아 반 강습이 1시간씩 있었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는 여성 전용 수영 수업이었다(나는 여성 전용 수업 시간에 등록했다). 초급반부터 상급반(배영, 평영반, 접영반 등), 마스터즈반으로 나뉜 수업들이 있었다. 자주 바뀌는 강사 선생님과 줄어든 회원 수에 따라 반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반과 합쳐져 새로운 반(초급반)이 생겼다. 평일 오후 1-2시는 자유 수영 시간이었고, 그 이후에는 아이들과 소수 정예 수업이 이어졌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저녁반 수업이 있었다.
여성 전용 수영 수업에 등록한 첫날. 모든 게 어색하고 어정쩡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생각보다 늦게 수영장에 도착해서 정신이 없었다. 어리바리 회원증을 찍고 락카 번호가 찍힌 종이를 들고 여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천을 제치고 안쪽으로 한 발 들어서는 순간 알았다. 그곳은 도떼기시장처럼 혼잡했다.
씻고 나오는 사람, 옷을 갈아입는 사람,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는 사람, 화장하는 사람, 샤워용품을 챙기고 씻으러 들어가는 사람... 두리번거리다 사람들을 헤치며 번호에 적힌 락카를 찾아 옷을 벗어 넣었다. 샤워용품과 수영용품이 든 가방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샤워실 앞 고리에는 색색의 수영 가방들이 제각각 걸려 있었다. 바로 앞 시간의 아쿠아 반 회원들이 수업이 끝나고 나와서 씻고 있었다. 샤워실 안은 서로 더 먼저 샤워기를 차지하려고 북새통이었다.
샤워실 중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어떻게든 샤워기를 차지해야 씻을 수 있을 텐데, 속으로 생각하면서 어디에 먼저 자리가 날지 살펴보며 고개를 왔다 갔다 하면서 두리번거렸다. 빈자리가 쉽게 나지 않았다. 생각보다 늦게 씻으러 들어오기도 했고, 마음은 조급한데 자리는 없었다. 초급반인 것을 알아보시고 먼저 씻고 들어가라고 양보해주신 분(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겨우 물을 묻힐 수 있었다. 처음 수업을 들으러 오는 초급반 사람들이 잘 씻지 않는다며 감시의 눈초리를 보내는 아쿠아 반 회원들도 계셨다.
빨리빨리 씻으라는 성화에 다 씻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셔서 수영복 입을 때 올려주신다고 자리를 잡으며 기다리는 분들도 있었다. 깜짝 놀라 "혼자 입을게요." 하며 거절했다(휴우). 수영복에 비누칠을 하면 부드러워져서 더 수월하게 입을 수 있다고 뒤에 서서 조언도 하셨다. 비누칠해서 샤워하고 머리를 감고 긴 머리를 묶었다. 수모를 쓰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경을 꼈다. 샤워용품을 샤워실 앞 한쪽 고리에 잘 걸어놓고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한 층 아래의 수영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매 수업 시작 5분 전인 55분에는 준비 체조 음악인 엄정화의 노래 <포이즌(Poison)>이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젠 꿈에서라도 나를 찾지 마.
난 니안에 없는 거야
이대로 나를 잊고
돌아가 그녀 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