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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Oct 29. 2024
귤향기 따라 효돈천 따라 트멍길 걷기
목요일마다 오전엔 컴퓨터 강화반에서, 오후에는 SNS 활용반에서 재미진 수업을 듣기에 결석하지 않으려 했지만요.
시청 서포터즈 팀이 하필이면 그날, 새로이 개장한 효돈구경(9景) 홍보 차 사전 탐방 현장활동 일정을 잡았더라고요.
수업도 중요하지만 모처럼 특별한 팸투어 기회가 주어졌기에 도리 없이 수업은 접기로 한 거죠 뭐.
여러 차례 효돈천을 답사했을 정도로 흥미진진해서 좋아하고 귀한 보석처럼 아끼는 지역을 탐방한다니 더구나 빠질 수 있나요.
기대감에 부풀어 약속시간 맞춰서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동장님을 위시해 효동구경 프로젝트 주무관과 주민자치위원회장 등 관계자분들이 출발 장소에 나와있더군요.
격려와 성원의 인사를
두루
나눈 다음 시작점인 쇠소깍 다리
스탬프부터 찍고 나서 전원 출발을 했지요.
우리의 발길을 인도하는 첫 번째 리본은 동백나무에 매달려 있었고 두 번째는 담팔수 가지를 꼭 붙들고서 펄럭거리더라고요.
한라산을 마주 보며 바람에 휘날리는 주황색과 초록색 리본 따라서 효례교를 통과해 차도를 건넜어요.
하효 입구 삼거리는 교통량 빈번한 대로인 데다 차가 씽씽 속력을 내서 달려 반드시 건널목을 이용하도록 전봇대에 안내판을 부착했더군요.
건강 걷기 활동도 물론 장려해야 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할 사항은 생활안전지침을 정확히 지키는 일이겠지요.
벼슬 사양하고 노부모 봉양에 극진했던 선비 고명학(高鳴鶴)의 효심에서 비롯돼 예로부터 효를 중시하는 선비마을로 알려진 효돈인데요.
서귀포 감귤의 주산지로 따뜻한 일조량 덕에 당도 높은 귤의 명성이 자자해요.
우리나라에서 겨울철에 가장 따뜻한 마을로 알려진 효돈은 근자 들어 효돈천 자연 생태환경의 우수성으로 각광받고 있지요.
효돈은 원래 소떼를 키우던 데라 ‘쉐돈(牛屯)’ 마을로 불렸대요.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서귀포시로 승격되면서 옛 신효리와 하효리를 통합하여 효돈동으로 칭하게 됐다네요.
현재 신효동에는 월라봉 아래 감귤의 메카인 감귤박물관이 확고하게 자리 잡혀가고요.
하효동에는 비경의 쇠소깍이 있어 테우 타기 체험이 색다른 관광의 백미로 꼽히지요.
테우는 가까운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할 때 해녀들이 타던 제주 전통 뗏목인데 관광상품으로 거듭났어요.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효돈천의 마무리 쇠소깍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8호가 됐지요.
하효마을 표지석 사잇길로 들어서니 길게 늘어선 효돈중학교 강당 건물이 좌측에서 기다렸는데요.
이 학교는 지난해 일 년간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느라 드나든 곳이기에 낯익었고 그래서 친숙하지요.
교정에 노거수인 담팔수 우람한 나무가 서있어서 가을 깊어지자 상록활엽수임에도 꽃처럼 화려하게 단풍 들어 낙엽이 지더군요.
학교 바로 옆부터 탐스럽게 익어가는 귤 밭이 연달아 이어졌어요.
문자 그대로 귤림추색(橘林秋色) 완연해진 효돈마을에 들어섰던 거지요.
귤나무마다 총총 매달려 주렁대는 귤은 앳된 샛노랑에서 금빛으로 완숙돼 영롱한 보석알처럼 빛나고 있더라고요.
아, 대단한 자연의 선물이구나! 탄성 절로 터지게 하는 아름다운 풍광이었어요.
지금 절기가 마침 트멍길 개장의 최적기, 이번 화요일에는 지역주민과 학생 백여 명을 초대해 정식으로 개장 걷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랍니다.
올 12월에는 탁상달력을 제작해 홍보용으로 널리 배부하기로 하였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명년엔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효돈 구경(9景) 트멍길' 코스 내 세 곳에 작은 쉼팡(쉼터)도 설치할 계획이라고 하네요.
잠시 후, 언뜻 봐도 새로이 튼 길임이 직감되는 생땅 흙길이 나타나더군요.
이 길은 위쪽 도로가 열리기 전까지 원래부터 사용해 온 농로 겸 인도였다는데요.
큰길을 이용하면서 옛길은 잊혀 잡초 우거진 덤불숲이 돼버렸고요.
나무와 풀들이 하도 무성하게 자라 길 흔적마저 아예 지워졌지요.
마을 어르신들의 고증을 들어가며 트멍길을 내려고 웃자란 나무를 제거한 후 평평하게 정비를 하고 축대도 쌓았다네요.
효돈천변을 되살리기 위해 주변 쓰레기를 말짱 치우고 길에는 야자 매트를 깔았다고 해요.
작년부터 행정센터와 효돈 주민자치회, 청년회, 부녀회가 합심 단결해서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왔대요.
효돈 9경(景)은 남내소-감귤박물관-월라봉-애기업개돌-호국영웅 김문성로-쇠소깍-소금막 - 검은 모래해변-하효항-게우지코지인데요.
트멍길의 트멍이란 틈새, 사이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래요.
기존 올레길을 벗어나 틈새로 효돈 마을의 아홉 명소(9景)를 구경할 수 있는데 종점에서 올레 6코스와 이어지지요.
전체 거리는 10.8km에 3~4시간 정도 소요되는 걷기 코스라고 합니다.
새소리 청량하게 어우러지는 소나무 숲이 갈라지더니 칼바위 표지석이 나타났지요.
느닷없이 전면이 훤하게 트이며 낯익은 전망이 드러났는데요.
그렇습니다.
지난해 두 번씩이나 남내소를 드나들었기에 백악 같은 바위 덩어리들 널브러진 풍경이 눈에 설지 않더라고요.
몇 발짝 걷자 이번엔 남내소 표지석과 첫 번째 스탬프함이 기다리기에 도장을 꾹 눌렀지요.
그 아래 비탈길에 하얀 로프가 연결돼 있기에 조심조심 내려가 봤는데요.
잡목 어수선해 남내소 전모는 거의 잡히지 않았어요.
나무를 좀 쳐내면 모를까 이 길에서 남내소를 바라보기엔 무리다 싶더군요.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본부와 문화재청의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효돈천 일원이라 손대기도 어렵겠지요,
문화재청과 협의가 이루어진다 해도 환경단체의 감시가 있으니 수목정비는 여의치 않겠더라고요.
작년에 찍은 두 장의 사진처럼 남내소에 이르는 계곡은 여태껏 보아온 여타 계곡과는 단연코 클래스가 다르더라고요.
상상 이상의 놀라운 묘경이 펼쳐져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어디에 이리 경이롭고 신비스러운 계곡이 또 있으랴 싶더라고요.
제주에서도 흔치 않게 꼭꼭 감춰진 비경으로 심장 마구 뛰게 만들던 경이로운 남내소 풍광이라니.
서귀포 해안의 검은 현무암에 길들어 하얀 바위는 도무지 낯설기만 했고요.
미 서부의 대단하다고 소문난 웨이브나 엔털롭 밸리에 비견되는 절경의 계곡이었어요.
잠시 훅~ 숨 멎게 만드는 정경이었지요.
사막 능선처럼
부드러이 웨이브 진 백악 질펀하게 깔렸고요.
추상적인 현대조각의 선구자 헨리 무어의 대형 전시장이랄까요.
효돈천과 하례리가 국가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된 건 지극히 당연하고도 남겠더라니까요.
눈앞에 열린 뜻밖의 신세계, 여태껏 어찌해 그 이름 드높이 회자되지 않았을까 의아할 지경이었어요.
관광지 개발에 혈안이 돼있는 지자체들인데 여태 이런 보석을 그대로 방치해 두다니.
울창한 상록수림 양편 벼랑 위에 빼곡하게 들어섰고, 높다란 암벽 아래엔 외경스러운 물길 깊이 모르게 열려있더군요.
물가 왼쪽에 크게 입 벌리고 있는 바위그늘집(궤) 마저 제단에 바쳐진 제물 취하는 이무기 드나드는 동굴처럼 보였고요.
등골에 소름이 좌악~금방 물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목덜미 낚아챌 거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요.
무릎 힘이 빠져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엄두조차 나지 않자 엉거주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네요.
이날 탐방코스에서는 제외됐지만 전에 본 남내소, 아직도 서늘타 못해 섬뜩한 기억 생생하네요.
끝도 없이 효돈마을 고샅길 이어지는데 좌우로 귤 밭 천지더라고요.
저만치 한라산을 배경으로 돌담에 둘러싸인 귤밭의 금빛 귤을 사진에 담느라 발걸음은 자꾸 더뎌졌네요.
해묵은 송악 덩굴 휘감긴 현무암 돌담과 보색 대비를 이룬 황금 귤 그리고 한라산, 사진에서 본 거 같은 포인트는 만나지 못했지만요.
아무튼 어지간히 사진은 많이 찍었답니다.
조생 귤 출하기를 맞아 귤 따기로 한창 바쁜 귤밭마다 입구에 컨테이너가 높이 쌓여있었고요.
선과장도 보이고 귤을 가득 실은 트럭이 좁은 골목길을 자주 오갔지요.
어느 귤 밭 쥔장은 힘들게 농사지은 귤을 맛 보라며 우리 손에 쥐여주기도 하더군요.
수확철 서귀포 감귤 농장주들은 귤 인심이 어찌나 후한지, 지나는 길손에게도 귤을 이리 챙겨주더라고요.
약간은 지루한 감이 들 정도로 고만고만한 골목을 한참 지나자 저만치 감귤박물관이 나타났지요.
일단 감귤박물관 앞에서 둘째 번 효돈 구경 스탬프부터 꾹 눌러줬고요.
귤 따기 체험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월라봉 안내를 맡은 전 효돈 주민자치위원장을 따라 월라봉으로 향했지요.
오전에 쾌청하던 날씨가 점차 흐려지며 하늘 가득 구름장이 몰려들었어요.
월라봉 초입의 웅장한 바위에 얽힌 서국이란 가장의 전설이 길게 이어져 발길 재촉하게 되었고요.
전망대에 올라도 기상상태가 별로라 섶섬과 제지기오름이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가 또렷하지 않더라고요.
더욱이 바람 어찌나 심하던지 전망터에서 내려오기 바빴네요.
잠깐 포제단 들렀다가 하산을 서둘러 이번에 찾아간 곳은 자연 암석 우뚝 서있는 애기업개돌과 구덕찬돌.
전설이야 그럴싸하지만 바윗돌보다 더 눈길 오래 머문 건 따로 있었어요.
어싱 황톳길이 그것인데요.
한국은 무엇이건 한번 떴다 하면 유행병처럼 전국적으로 번져, 요즘 황톳길 맨발 걷기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잖아요.
서귀포에도 숨골공원 어싱 광장과 동흥천 힐링 어싱장이 개장돼 많은 이들이 찾고 있거든요.
그런데 소리 소문 없이 효돈에도 참한 어싱장을 열었더라고요.
황톳길 디자인 구성도 효율적으로 잘돼있고 특히 발 씻는 세족대를 그 어디보다 쓸모 있게 잘 만들어 놓았더군요.
다만 널리 홍보가 안된 점이 아쉬웠어요.
한길 가로 내려오다 만난 호국영웅 김문성, 절로 숙연해질밖에 없는 다섯 번째 효돈의 보물인데요.
효돈 출신으로 육이오 전쟁영웅인 고 김문성 중위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자는 의미겠지요.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거저 주어진 게 아니지요.
Freedom Is Not Free! 이 문구는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에 있는 기념비 벽에 쓰여있는데요.
자유는 공짜로 거저 얻어지는 게 결코 아닙니다.
숱한 애국 용사들이 젊은 피를 조국의 제단에 바쳐 어렵사리 얻게 된 자유민주주의, 그 위에서 평화와 번영 누리는 게 아니겠어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식사를 한 다음 행선지는 쇠소깍, 구구한 설명이 필요치 않은 명소이지요.
이날도 뱃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꽤 됐고, 물가 양편에는 안전요원이 고무보트를 타고 대기하더군요.
여유롭게 테우를 타고 쇠소깍 짙푸른 강물 위를 흘러가며 문득, 이 자유와 평화가 너무도 감사하게 여겨졌습니다.
삼십 분간의 태우 타기 체험을 마치고 소금막 검은 모래해변으로 나와 건너편 바다에 널빤지 쪽처럼 뜬 지귀도를 바라봤네요.
인간의 소유욕은 한이 없어 저 섬을 통째로 사들인 누군가는 저 무인도에서 하루라도 온전히 천국을 맛보았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글쎄요, 그도 나이 들어 세상을 하직하는 날이 올 테고 그때 움켜쥔 것들 하나도 갖고 갈 수 없음에 회한 외려 깊어지지 않을지요.
까만 모래톱이 펼쳐져 있어서 삶과 죽음까지 헤아려 보았던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여기서 우리는 해산했는데요.
제 경우는 현장활동 탐방기를 써야 할 순번이라서 이튿날 다시 쇠소깍으로 와야 했지요.
나머지 하효항과 게우지코지 기사를 완성시키려면 마저 돌아봐야 했으니까요
.
이날은 너무나도 화창하게 맑은 날씨였어요.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였고 바다 빛깔은 눈부시게 푸르렀지요.
덕분에 쇠소깍에서 남청빛 바다를 한껏 즐겼고요.
쇠소깍 상가 천천히 돌아다니며 귀요미가 있는 감성 소품샵 라봉상회도 담아보고 아이스크림 집도 들렀지요.
근처 공원에서 조손이 함께 노니는 정스러운 풍경도 담아뒀고요.
검은모랫벌 사박사박 걸어서 스탬프를 찍으러 하효항으로 건너갔지요.
하효항 스탬프함은 주변 상가에 들러 물어봤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보물찾기 하듯 샅샅이 한참 뒤져야 했네요.
새하얀 등대와 빨간 등대가 마주 선 방파제 위로 올라가자 비로소 빨간 등대 바로 앞에서 스탬프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전에 쇠소깍 축제 때 와봤지만, 축제 행사를 한 하효항이 그리도 넓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소금막 터를 지나고 알수물 터를 거쳐 느릿느릿 게우지코지로 향했습니다.
이번 일정의 마무리, 종점인 아홉 번째 구경 게우지코지는 하효항에서 보목 방향으로 한 십여 분 걸어가면 만나게 되지요.
조붓한 언덕길 위를 걷는 동안 차들 왕래가 빈번한 이유는 도중에 분위기 좋은 유명 카페가 연달아 있기 때문이어요.
게우지코지는 바다로 돌출한 육지의 끝머리라 모양도 독특하지만 주변에 해국과 갯머위꽃이 한창이더라고요.
이날 방문이 즐거웠던 이유는 몇 번 들른 게우지코지 바위보다 뜻밖에도 연보랏빛 해국 무리와 조우해서였지요.
삶의 잔재미를 이런 데서 못 느낀다면 행복은 더 막연한 감이 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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