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초의 선사가 동다송에서 그러셨지요.
차는 홀로 마시면 신묘하고 둘이 마시면 좋고 여럿이 마시면 나눠 먹이나 마찬가지라고요.
그분이 즐기신 녹차도 아니고 저는 텃밭에 채소를 가꿔 여럿하고 나눠 먹으려 했어요.
이곳에 이사 와서 이태 동안 연달아 늦가을 텃밭농사로 재미를 쏠쏠하게 봤거든요.
무공해 유기농 야채이니 올해도 샐러드 해 드시라며 기도회의 미국 할머니 리사 씨와 수잔 씨께도 드렸고요.
클래스 메이트들한테도 한 봉다리씩 안겼네요,
나아가 딸내미 이웃분들에게랑 두루 인심 넉넉히 쓰려했거든요.
허나 금년도 계획엔 불가피하게 차질이 생기게 됐어요,
우선 날씨가 자주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추위로 싹들이 영 기를 못 펴는 데다가, 맨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좀 자랐다 싶으면 동네 멧새들이 모여들어 신나는 파티를 열곤 했거든요.
그렇다고 날마다 뒤란에 나가 훠어이~~ 새들이나 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순라꾼 열이 지켜도 막지 못하는 도둑 하나라는데 새들은 시도 때도 없이 떼거리로 몰려들잖아요.
꼴난 채소 심어놓고 치사하게 새들하고 먹거리 가지고 눈치싸움 벌일 수도 없고요.
그리 재재거리며 맛있어 죽겠다는데 그래 나눠 먹자.
니들 먹다가 남기면 그거나 먹지 뭐... 하고는 백기를 들었네요.
올해는 독특한 향의 고수, 월남 국수에 필히 들어가고 남미 사람들 애호하는 향신채인 실란트로도 심었어요,
지난봄 고수 화분 하나를 키웠는데 하얀 꽃이 피더니 지고 나자 씨앗을 영글리기에 자잘한 씨를 받았다 뿌렸지요.
실은 씨앗 봉지에 이름을 쓰지 않아 뭔지도 모르고 심었는데요,
보통 식물 싹은 아기적에 동그스럼한 쌍떡잎을 내미는데 시금치 새싹처럼 길쭉한 떡잎이라 대체 무언가 싶었어요.
그런데 본잎이 나오는 걸 보니 고수 잎새더라고요. 나 실란트로야~ 뽐내듯 한 향도 틀림없었고요.
새들도 향 짙은 실란트로는 건드리지 않을 거라 얘네들만은 안심이네요.
고랑 바투게 두 종류의 싹들이 열을 지어 나있는 데에는 곡절이 있답니다.
처음에 씨를 뿌릴 땐 아주 자잘한 알갱이로 미루어 갓씨인 줄 알고 뿌렸는데요.
다른 씨들은 모두 다 발아를 했는데도 그 씨앗을 뿌린 자리만은 도통 아무 기별이 없는 거예요.
씨앗이 부실해서 안 나는가 보다 포기하고 고랑과 고랑 사이에 다시 갓씨를 사다 뿌렸는데. 뒤늦게 꼬물꼬물 움이 돋으며 두 종류 서로 다른 새순이 키재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위쪽 부드러운 녹색 잎은 양귀비, 연할 때 쌈이나 나물로 먹을 수 있는 식용이며 몇 포기 남겼다 꽃도 완상 하지요.
아래 연두색 쌍떡잎이 자라면 콧마루가 싸해지는 토종 갓, 갓김치나 쌈 거리로 최고인 자줏빛 갓이 됩니다.
아마도 양귀비는 꽃씨라고 모양내고 폼 재며 나오려 뜸을 많이 들였던가 봐요.
시금치 사이 오른쪽 아래로 향나무 잎새 같은 낯선 풀이 보이시나요?
저 혼자 몰래 씨를 묻었던 캘리포니아 파피가 어느새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네요.
지난봄 밭자락 여기저기 오렌지빛 환한 꽃을 피웠듯 명년 봄에도 뒤란에서 파피를 만날 겁니다.
겨울 지나 이제 봄도 머지않으니......
수난과 고통의 계절 다음엔 영광스러운 부활의 봄이 틀림없이 옵니다.
뒤란 텃밭에 다시 새떼 모여들어 잔치를 벌입니다.
새들 입맛에는 알타리무 순보다 얼갈이배추가 맞는지 겨우 본잎을 내밀자마자 그악스럽게 뜯기고 마네요.
고 조그만 부리로 얼마나 쪼아댔으면 배추밭이 초토화 직전에 이르렀겠어요.
동부에서는 토끼나 사슴 때문에 채소를 심고는 망을 쳐두는데 그들이 없는 대신 새떼의 공격,
공중에서 날아드는 새들이야 무슨 재간으로 막겠나요.
바깥 뒤란에 새들이 모여 조잘대면 울집 멍이가 왕왕거리며 기를 쓰고 짖어대도 아랑곳 않고요.
바람개비나 허수아비를 세운들 영악해 빠진 녀석들이 어디 무서워나 하겠어요.
해서 내린 결론이 좀 남겨라, 우리 사이좋게 나눠 먹자~.
하긴 걔네들이나 우리나 잠시 지구별에 놀러 와 이 땅에 세 들어 살기는 마찬가지인걸요.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