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거북이 마라톤에 참가했다.
명칭부터도 맘에 드는 행사다.
거북에게서 이 시대에 필요한 ‘느림의 미학’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이솝 우화가 생각나서도 그러하다.
그 외에도 거북은 용, 봉황, 기린과 함께 영물로 기려지며 장수의 상징이기도 한다.
거북이 마라톤은 명칭만 마라톤이지, 기실은 사람들 물결 따라 설렁설렁 산책하는 걷기대회에 가깝다.
주말이자 음력 설날인 이날, 하늘은 청명히 푸르고 바람결 부드러워 걷기 안성맞춤인 날씨였다.
단비 흡족스레 내린 덕에 숲은 몰라보게 푸르러졌다.
늘 매가리없이 누르뎅뎅하기만 하던 샌가브리엘 산자락도 윤기 감도는 초록빛 생기 넘쳐 눈을 시원하게 해 줬다.
산자락따라 피어난 겨자꽃이 길섶에서 산들거리며 봄노래를 불렀다.
고마운 빗님 덕분으로 누리 어디나 생명의 환희로움이 흘러넘쳤다.
정녕 물은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물질로, 생체(生體)를 유지시키는 필수성분이 아니던가.
시간 맞춰 집합장소에 도착해 보니 벌써 참가자들로 공원 안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지난해보다 더 성황을 이룬 인파, 올해로 세 번째라는데 주최 측인 미주 한국일보사 문화체육행사로서는 성공적인 자리매김을 했지 싶다.
행사 시간이 임박해질수록 시민들은 점점 더 구름떼같이 몰려들었다.
여덟시가 되자 간단한 준비체조로 스트레칭을 한 다음 출발신호에 맞춰 곧바로 걷기 시작했다.
한인행사이나 교민만이 아니라 여타 외국인들도 다수 동참, 길 빡빡하게 메울 정도로 그만큼 참여자가 많았다.
화창하다고 예고된 날씨였으나 구름이 잔뜩 몰려온 덕에 산행하기엔 아주 마침맞았다.
적당히 습기 찬 공기는 쾌적하도록 삽상했다.
그리피스 팍 올드 쥬 피크닉 구역에서 출발해 제법 너른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어린이를 데리고 참가한 가족들이 많아 거의 아장대는 아이 보폭에 맞춰 걷다시피 했으므로 속도는 전혀 낼 수 없었다.
2017년 새해를 맞아 한인들의 건강과 커뮤니티 화합을 기원하는 신춘맞이 축제 ‘건강 걷기 대회’ 취지에는 부합됐다.
올해도 가족 단위가 역시 주를 이뤘고 직장 단위 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환담 나누며 봄마중 하는 한인들 표정은 저마다 밝고 환했다.
각 대학 동문회와 산악회 단체들도 한자리에 모여 새해 결속을 다지는 모습들 또한 보기 좋았다.
산자락 휘돌며 완만한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니 저 아래로 다운타운 윤곽이 또렷하게 잡혔다.
천문대 뒤편 산언덕 타고 산자락 휘휘 돌며 한 시간 남짓 산에 올랐다.
무리 없는 일정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게 배려해 코스를 짠 점이 돋보이는 행사였다.
거북이걸음으로 슬슬 걸어 하산까지는 총 두어 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산행을 마무리짓자 자원봉사 학생들이 박수와 함께 배꼽인사로 환영해 줬으며 협찬사의 선물도 푸짐했다.
그린피스 산책로를 따라 상쾌한 공기를 가르며 쌈빡하게 오전운동 한번 잘했다.
봉사활동을 나온 손자와 만나 딸내미 차편을 기다렸다가 설날이라고 함께 차이나타운에 갔다.
내 기호에 맞는 외식 중 하나인 샤오마이가 있는 딤섬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평소에 가봐도 그렇지만 마침 피크 타임이기도 해, 그 넓은 홀 가득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자녀들에게 전통의상을 입힌 중국인들 차림새 통해 여기서나마 아쉬운 대로 설날 분위기를 느꼈다.
새해 페스티벌을 알리며 도로 위에서 펄럭이는 현수막에는 날개 활짝 편 닭이 웃고 있었다.
느긋하게 돌아오는 길, 엔젤리스 산봉우리마다 구름인지 안개인지가 향 피워 놓은 듯 스멀스멀 흘러 다녔다.
거의 날마다 걷긴 하지만 오늘은 약간 땀이 흐를 정도로 진짜 기분 좋게 걸었다.
쌈빡하게 운동도 하고 점심을 먹고 나니 식곤증이 슬슬 몰려왔으나 '걷기'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누구나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인 걷기다.
내 경우 일주일에 닷새를 30분씩 오고 가며 걷다 보니 바른 걸음걸이가 궁금해 검색 통해서 제대로 익혀뒀다.
땅이 꺼질세라 조신하게 얌전히 걷던 걸음걸이 자세부터 수정하게 됐다.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면 자동으로 배는 등 쪽으로 당겨지며 허리는 곧게 펴진다.
턱을 당기고 시선을 15m 전방쯤에 두며 두 발을 11자로 유지한 채 발은 뒤꿈치부터 착지, 발 바깥쪽, 엄지발가락 순서로 몸의 무게 중심을 옮기면서 성큼성큼 걷기.
학교를 다니며 영어공부도 중요하지만 내가 더 우선시하는 것은 규칙적인 운동으로 얻는 건강 효과다.
귀가 후 샤워부터 하고 나서 컴퓨터 앞에 앉으니 감사송이 저절로 읊어졌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