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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08. 2024

듀센미소 선물하기

UPS 택배차가 멎는다.

가게에 필요한 용품을 더러 주문해 쓰긴 하지만 오늘은 운송될 물건이 없는 날.

으레 옆집 볼일이려니 하고 시선을 돌린다.

직사각형의 기다란 박스를 든 국방색 유니폼이 의외로 내 쪽으로 향한다.

그 직원이 상자를 건네주며 본인 확인을 한다.

내 이름이 틀림없으나 고개 갸웃대며 사인을 해준다.

 

그가 돌아서자마자 서둘러 포장을 뜯는다.

가위나 칼을 이용해 찬찬히 뜯던 개봉 절차가 모두 생략될 만큼 마음이 급하다.

낯선 샌디에이고가 발신지,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이라 궁금증이 증폭된다.

누가 보낸 뭔지 도무지 가늠이 안된다.

짐작 가는 바도 도통 없다.

 

상자 안에는 투명지에 포장된 꽃다발이 조신하게 누워 있다.

스윗 하트란 이름의, 송이가 작아서 귀엽고 예쁜 장미다.

봉오리가 반쯤 열린 진분홍 연분홍 자주 노랑  빛깔의 장미가 싱싱하게 어우러져 있다.

 

인터넷 온라인 주문처 팸플릿과 꽃 영양제 사이에서 흰 봉투를 찾아낸다.

딸이 보낸 카드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아울러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라는 인쇄체로 된 글이 영어로 간단명료하게 단 두 줄(내 독해 실력에 맞게) 들어있는 카드다.

그럼 그렇지, 여부가 있겠나.

 

꽃을 화병에 꽂는데 자꾸 입이 벙그러진다.

받아서 기쁜 게 선물이지만 특히 꽃 선물은 기쁨 이상의 행복감을 안겨준다.

꽃 속의 페로몬이라는 화학 성분이 감각 채널에 영향을 줘 기분 좋은 정서를 유발한다는데.

그 때문인지 누구라도 꽃 선물은 기꺼워하며 반긴다.

딸로부터 받은 장미꽃, 꽃 선물은 사랑하는 연인끼리만 주고받는 것은 아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손님들에게 자그마한 꽃바구니나 리스를 선물한다.

몇 년째 계속되는 연례행사인 셈이다.

내 나름으로 성의껏 카네이션이나 장미를 조화롭게 꽂아 꽃바구니를 만들거나 전나무와 솔방울로 리스를 만드는 것이다.

 

현대는 감성 마케팅 시대라던가.

최우선은 양질의 고품격 서비스이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다.

그렇다고 거창스레 고객만족 고객감동의 마케팅 전략까지 들먹거릴 만큼 대단한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닌 터.  


단지 사은의 뜻이다.

상가마다 빠짐없이 박힌 드랍샵인데
우리집을 단골 삼아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한번쯤은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서툰 영어로 긴 사설 늘어놓을 수도 없으니 그저 간단하게 감사 선물이라며 꽃바구니를 안겨준다.

받는 이들도 거기 담긴 진심을 충분히 헤아린다.

한 사람에게만 주는 꽃 선물이 아니니 부담 느낄 바 없이 표정 환하게 꽃바구니를 들고 가는 사람들.

덩달아 나도 흐뭇해진다.

 

꽃 선물은 누구나 다 한결같이 좋아한다.

감정표현이 솔직한 그들답게 진정으로 기뻐하며 감격하는 모습에 뭉클해지기도 한다.

어떤 이는 벅차다는 시늉으로 가슴에 손을 얹는가 하면

겸연쩍은 듯 어깨를 으쓱하는 이도 있다.

갑자기 수다쟁이가 되는 이, 귀까지 발그레 붉히는 이도 있다.

볼에 가벼이 키스를 남기거나 허그를 하는 사람도 있다.

감동에 반응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누구든 꽃 선물을 받으면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그 미소가 듀센 미소다.

프랑스 심리학자 듀센이 관찰하여 발표한 것으로

꽃 선물을 받으면 대부분 눈가와 입술 근육이 움직일 정도의 밝은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천진난만한 아기의 사진만 봐도 절로 미소가 벙글듯 순수 미 그 자체인 꽃을 누군들 마다할까.

 

오래전 어떤 광고에 ‘꽃을 든 남자’가 등장한 적이 있다.

분명 남자는 그 꽃을 누군가에게 건넬 것이다.

연상작용에 따라 슬몃 그 대상에 자신을 대입시켜 본다.

어디까지나 상상은 자유롭고 즐거운 것.

무릎 꺾고 헌정하는 한아름 꽃다발이야 더욱 황홀할 테지만 등뒤에 숨긴 꽃묶음을 불쑥 내밀지라도 그 아니 좋은가.

수로 부인을 위해 벼랑에 핀 꽃을 따다 바치는 신라 향가 속 노인도 멋진데

하물며 근사한 남자가 주는 꽃 선물이라니, 역시 광고는 주효했다.

 

감사의 뜻을 전하는 댕스기빙데이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마음이 먼저 설렌다.

그간 고마웠던 분들과 기억해야 할 이웃들에게 향기로운 마음의 꽃다발을 전하노라면 서로의 가슴에 한아름 채워질 행복감.

장미향에 취한 고양된 기분 때문이리라, 따스하고도 훈훈한 물살이 그득 스며든다.

 -  2003 미주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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