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유적이 있는 삼양동

by 무량화


제지기오름 인근 구름층 사이로 일출 눈부신 아침. 청명하고 화창한 일기였다. 오일육도로를 타고 한라산을 넘었다. 원당봉 아래 양지녘에 안긴 선사시대 유적지를 찾기 위해서다. 원당봉은 멀리서 보면 참 묘한 형태다. 딱 임산부가 누워있는 모습이니까. 원당사 창건설화에 따르면 원나라 황제인 순제가 대 이을 자식이 없어 애를 끓였다. 그즈음 고려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갔던 기황후가 탐라땅 한 곳의 기묘한 지형인 여기에 탑과 큰 사찰을 세워 지극정성 기도를 드려서 태자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원나라 때 이 오름 중턱에 원나라의 사당인 원당(元堂)이 있었대서 이름도 원당봉이다. 전국 유일의 삼첩칠봉, 세 개의 능선에 일곱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는 곳이다.



제주시 삼양동 일대의 토지구획정리사업 중에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지인 이곳. 전형적인 명당터인 배산임수 지역이다. 앞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바다에 해산물 풍성하고 곳곳에서 용천수 퐁퐁 솟아난다. 뒤편은 울멍줄멍 펼쳐진 숲 푸른 산이 안온하게 감싸 안았다. 꼼꼼한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초기철기시대를 전후한 시기의 대단지 마을 유적이 확인된 이곳. 집터 내부에서는 적갈색 항아리 등의 토기류와 돌도끼나 손칼 같은 석기류를 비롯 동검 등 청동기류가 출토됐다. 주요 곡물인 불에 탄 콩, 보리 외에 중국계 다양인 옥환, 요령식동검편, 유리옥과 철기류 등 다양한 유물이 나왔다. 이에 따라 제주도 청동기시대 후기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로 자리매김됐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터에서 중국 유물이 나온 건 별로 신기한 일이 아니겠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말 키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지인 이 땅에 달로화적총관부를 둬 탐라를 직속령으로 삼았다. 1273년 여몽 연합군이 삼별초 난을 평정한 후 원은 병력과 함께 목호를 탐라에 상주시켰다. 이후 탐라는 100년간 원의 지배에 들어갔다.



이렇듯 여러모로 생각거리, 볼거리가 많은 삼양동 선사유적지다. 그러나 내겐 멀구슬나무꽃으로 기억되는 이곳. 라일락꽃처럼 연연한 연보라꽃이 오월 싱그런 바람결 따라 높다란 나무에서 나붓거렸다. 잠시 일상의 닻을 내리기로 한 서귀포. 때는 11월이었고 여기 와서 처음 본 윤기 나는 노랑열매는 멀구슬나무 열매였다. 지중해 물빛처럼 짙푸른 창천에 점점이 찍힌 노란빛 열매는 보석 같았다. 그 후 몇 해 지나 연결된 열매와 꽃, 마치 시 한 편 완성시킨 듯 기껍고도 뿌듯했다. 이번에 본 멀구슬나무는 한창 녹음 왕성해 너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또 하나 내 기억의 현을 터치하는 인상적인 구조의 어떤 집. 삿갓조개 모형으로 옹기종기 엎딘 움집도 움집이지만 굴립주 주거지란 명칭을 단 원두막 비슷한 형태의 고상가옥이다.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였다. 갈리시아 지방을 지나는데 집집마다 마당에 독특한 건물이 한 채씩 서있었다. 사당인가, 기도처인가? 낯선 그 정체가 궁금해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오레오'라고만 했다. 스페인어를 모르니 그 건물의 용처나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오레오(Hórreo)라고 불리는 옥수수 따위 곡물 저장 창고로 설치류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촘촘히 창살을 박은 데다 습한 기후대라 지상 높직이 올려 지은 건물이었다. 이곳 유적지에서도 설명서를 읽어보니 역시 같은 용도였다. 여나믄 가구의 원형 움집 사이에 하나씩 지어졌고 곡식이나 씨앗을 보관하는 공동창고로 쓰였다고.



방문객 아무도 없어 호젓한 분위기 즐기며 여유를 부렸으나 야외라 아직은 따가운 구월 햇살이다.

주거지로 직행하며 뒤로 밀어둔 외부전시관부터 먼저 들어간다.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는 텅 빈 공간, 한바퀴 빙 돌아본다. 그 무엇도 바뀔 리 없는 전시실이나 태양의 각도만 변해 사진 담기가 상그럽다. 시원찮으나마 사진이 모든 설명을 대신해 주니 이 정도로 걍 패스. 선사시대 제주인의 삶을 오롯이 담은 장소란 자부심도 부질없다. 내·외부 규모 있게 잘 만든 유적지이나 들인 품에 비해 성과는 미미할 듯. 해마다 지붕 햇볏짚으로 새로 잇는 일만 번거로울 거 같다. 199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며 제주시 세계유산본부가 만든 팸플릿 문구 구구절절 자랑스러우나 메아리가 거의 없어 힘 빠진다. 청동기시대니 초기철기시대니, SF 영화도 아니고 판타지물 애니메이션이라면 또 모를까 요즘 애들 관심사항이 아니다. 골동취미를 가진 나만 그저 언뜻언뜻 예전 고분발굴현장이 심상에 겹쳐져 자못 느껍다만.



다음 차례는 시원한 내부 전시실, 썰렁하다 못해 휑뎅그렁하다. 여기 또한 안내 데스크를 지키는 해설사 외에 실내는 텅 비어있다. 하긴 청추의 이 좋은 날씨에 제주를 찾은 여행객이 금같이 귀한 시간을 뉘라서 역사탐방에 할애하랴. 구태어 온다면 궂은 날씨라거나 더러는 사학도들이나 올까 그 정도다. 지역민들은 제각금 생업에 바쁘고 결국 역사유적지를 찾는 건 단체로 몰고 오는 학생들에 국한될 터. 나같이 고리타분한 취미가 있다면 모를까 대부분 별로 관심 두지 않는 분야라 올 적마다 거의 이랬다. 세상은 하루 다르게 변해간다. 눈부시게, 가 아니라 어지럽게 변화하는 세상이다. 쳇지피티에 몰리는 세태의 입맛을 어찌 석기시대 원시 밥상으로 돌려놓으랴. 빠르게 더 빠르게, 줄임말이 통상적이고 영상도 쇼츠가 대세다. 외국어마저 동시통역 자재로운데 미주알고주알 설명해 봤자 검색하면 단박 더 시시콜콜 알려주는 잡설들. 길게 늘어지면 단박 지루해 내빼는 사람들이니 이쯤에서 사설 맺기로 한다.


외부 전시관ㅡ상

실내 전시실ㅡ하

선사유적지 내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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