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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Jun 09. 2024

개구리 소리 들리는 하논분화구

오후 무렵 하논분화구를 찾았다.

다른 때는 예술의 전당 맞은편 길로 하논에 들어가는데 이번엔 방문자 센터에서 내려갔다.

오늘은 벌써부터 별렀던 개구리 소리를 들으러 가는 중이다.

모내기철이 가까워지면 올챙이가 자라 어느새 들판 가득 개굴개굴 와글와글 개구리 소리 요란해진다.

제주 내에서도 유일하게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 하논 분화구.

봄가뭄이 심하다고 하던데 엊그제 비로 좀 해갈이 된 듯 분화구 안은 저수지처럼 물이 그득했다.

지난번 자운영 꽃을 보러 왔을 적 만해도 푸석한 흙먼지 분분히 일었더랬는데 하논 이름대로 큰 논 꼴을 제대로 갖췄다.


개구리 합창을 듣기엔 너무 일러 분화구를 빙 둘러서 하논성당 터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역사를 읽다 보면 종교의 이름으로 혹은 신앙을 빙자해 비이성적 행동을 합리화시키려 드는 걸 보곤 한다.

조선말 참혹한 살육의 광기가 휩쓸었던 비극적 사건인 이재수의 난.

산남지역 최초의 초가 성당이 하논에 세워졌으니, 여기 프랑스외방선교회 소속 주임신부와 조선인 보좌신부가 부임했다.

사제품을 받자마자 곧장 하논으로 온 김 신부인지라 한창 젊은 데다 성품이 강직했다.

그는 신념과 열정에 더해 의욕이 넘쳐흘러 공격적으로 전교활동에 나섰다.

섬의 지역적 특성인 전통 민속과 미신 숭배를 척결하고자 앞장섰으며 문란한 축첩제도를 타파하는데 주력했다.

그로 인해 촉발된 신축교안 즉 이재수의 난은 숱한 사상자를 냈으며 결과적으로 본당마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공과는 있으니 김 신부가 1901년 저술한 교리서인 <수신영약>은 가톨릭과 토착종교와의 충돌상을 연구하는 중요자료.

중남미 문화와 민족을 깡그리 소멸시킨 스페인 정복자들 역시 십자가 든 선교사를 앞장 세웠다.

멕시코와 페루에서의 찜찜한 기억이 되살아나서일까.

늦오후 햇살이 산머리에 걸려 머뭇대는 시간까지 화해의 탑 앞에서 묵상 시간을 길게 가졌다.

하논성당터에서 나와 모판 손질을 하고 있는 아낙에게 다가갔다.

환갑이 넘었다는 그녀는 남편과 둘이서 논농사를 짓는데 남편은 비료 사러 농협에 갔다고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마침 잘 만났다는 듯 잠시 허리를 펴고서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웠다.

하긴 왜 아니 그러할까.

진흙 속에 발 담그고 온종일 엎드려 일만 하며 말 한마디 나눌 사람도 없으니 오죽 지루하랴.


정신없이 일손 바쁜 철에는 십만 원의 품삯을 준대도 사람 구경할 수가 없다고 절레절레 고개 흔드는 그녀.

하물며 논바닥에서 무슨 말 상대를 만나겠나.   

밤에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냐니까 엊그제 비 오던 밤엔 악머구리 끓듯 시끄러웠다고 한다.

흐흠! 기다려볼 만하겠군, 내심 흐뭇한 기분.

요즘도 거머리가 있느냐고 물으니 가끔 보인다며 농약을 적게 써서 우렁이며 개구리와 새들의 천국이 여기라고 한다.

하논은 시에서 특별 관리를 하는 지역이라 벼농사에 적정 이상의 농약 수치가 나오면 수매는 물론 지원이 끊긴다고.

철새 도래지라서 그렇단다.

추수 후 볏짚까지도 시에서 일괄 수매해서 철새들을 위해 논바닥에 깔아 둔다고 했다.

그래그런지 오늘도 하얀 왜가리 떼 지어 노닐고 있었다.

새들 때문에 모판 관리에 곱으로 수고가 들어가지만 이에 불평 늘어놓을 처지도 못된다고 하였다.

예서 몇 십 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녀는 전엔 농사짓고도 남을 정도로 용천수가 충분했다고 했다.

헌데 여기저기서 집을 지으며 물을 하도 빼내는 바람에 용천수가 마르다시피 됐다고.

퉁퉁퉁 경운기 소리가 나더니 그녀 남편이 돌아왔다.

하릴없는 싱겁이가 일손 방해나 하는 거 같아 눈치가 보였다.

인사를 하고는 어두울 때까지 기다리기 좋은 방문자 센터 쪽 데크로 올라왔다.

물이 흥건한 논은 물꼬를 단도리 잘 한 논이나 이처럼 논바닥 메말라 갈라 터진 논도 있었다/육십여 년 만에 본 거머리(수질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실증)




산마루에 걸렸던 해가 꼴깍 졌다.

반달이 청남빛 하늘에 떠올랐다.

어슴푸레하던 사위가 점점 먹물빛으로 변해갔다.

건너편 삼매봉 중계탑 빨간 조명이 깜빡거리고 농가마다 불빛 환하게 밝혀졌다.

여덟 시쯤 되자 개구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만큼 옹골찬 소리는 아니나 그래도 이게 웬 생각잖은 시혜인가.

맹꽁이인지 두꺼비인지 간헐적으로 꾹꾹 거리는 소리도 섞여 들었다.

한참을 전화기 동영상 누르고 개구리 소리를 담았다.

물바람이 한결 차가워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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