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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2. 2024

벨리 포지에 다녀와야겠다

참고 견뎌야 하는 忍土


짓눌러둔 자존심이 슬슬 고개를 치켜들며 불끈 오기가 솟았던가. 아니면 오만이었던가.

고난의 시간은 이미 다 지나갔겠거니, 슬그머니 허리를 폈다.

쓰디쓴 맛 그만큼 겪었으면 이쯤에서는 마땅히 접수해야 할 행복이라고 오지랖 넓게 시건방을 떨었다.

당연히 앞으로는 먹장 같은 비구름 흩어지고 눈부신 하늘이 펼쳐질 줄 알았다.

거친 황야의 자갈길 벗어나 푸른 초원을 걷게 될 줄 알았다.

더 이상의 파도 몰아치지 않는 순탄한 항해일 줄 알았다.

웬걸,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도처에서 복병처럼 나타나는 장애물들.

수차 헛물을 켜고 허방을 짚고 나서야 비로소
산다는 일이 계산이나 생각처럼 쉽지도, 만만치도 않다는 데 동의하게 됐다.

다시금 닦달하듯 조롱하듯 심술궂은 폭풍이 후려쳤다.

설상가상이요 엎친 데 덮친다고 짝을 지어 양쪽에서 들이닥치는 힘겨운 시련 앞에 스르르 무릎이 풀렸다.

야속했다. '도대체 얼마나 더 연단하실 겁니까?' 종주먹을 들이대다가
종당엔 '어련히 알아서 처리하시리까'라며 다 맡겨버리고 뒷전으로 물러난다.

생억지나 강짜 부리는 대신 뒷짐 지고 그냥 수용하기로 한다. 도리 없는 노릇이다.

머리를 쥐어짜봐야 뾰쪽한 수가 나서지도 않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것이라 했다.


이 세상은 사바세계, 참고 견뎌야 하는 인토(忍土)란 뜻이라지.


하지만 언제나처럼 참고 견디어 이 난관을 극복해 내고야 말리라는 다짐 이전에 몸과 마음이 먼저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으스스 한기가 든다. 전신만신 욱신거린다.

이보다 더 모진 역경을 겪는 이도 숱한데 웬 엄살이냐고 나무란다면 저마다의 임계점은 다르지 않냐는 투정이 울먹거림으로 터지지 싶다.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어둠의 벽에 부딪쳐 주저앉을 것 같은 순간 홀연 떠오르는 곳,

그렇다, 벨리 포지에 가봐야겠다.


벨리 포지는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격전지 중 한 곳으로 낮은 등성이 사이에 골짜기와 평원을 품고 있는 펜실베니아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집에서 벨리 포지까지는 시간 반 거리로 차창밖엔 참나무 숲과 올드 타운이 연달아 스치는가 하면 나룻배 한 척을 띄울만한 곧은 수로가 정연하게 곁을 따른다.

교통수단이 취약했던 그 예전, 각처에서 보낸 군자금이 수도인 필라델피아에 모이면 필요한 물자를 구입해 전방으로 보내지던 군수품 보급로였다는 수로다.

1775년 보스턴 차 사건으로 촉발된 영국군과 대륙군 간의 전투는 독립전쟁으로 발전된다.

서로 밀고 밀리는 가운데 뉴욕 뉴저지 일원에서 칠 년에 걸쳐 지리멸렬전투는 계속되었다.

그래서일까, 동네 인근 묘역의 빗돌 중에는 생몰 연대가 1800년 초로 기록된 오래전 묵뫼가 더러 눈에 띈다.
 

민병대로 이루어진 대륙군과 잘 훈련된 영국 정예부대의 초반 전투에서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대륙군이었다.

퇴각로마저 차단된 채 일만 이천에 이르는 패잔병을 이끌고 기아와 엄동설한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벨리 포지에서 마지막 항전의 의지를 불태운 독립군 사령관 워싱턴이다.

죽을 각오로 결연히 임해 열 두척의 배로 수백 군단의 왜선을 대적해 물리칠 수 있었던 충무공과 마찬가지로 워싱턴은 벨리 포지에서 절망적 상황을 역전의 기회로 전환시킨다.


2천 여 병사를 혹한과 굶주림으로 잃고만 악조건이었다.

그 속에서도 희망은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굳혀 군대를 재정비하고 군인들을 독려하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패색 짙은 전쟁을 마침내 승리로 이끈 워싱턴.

낮으막한 동산에 둘러싸인 분지 안.

돌로 지은 작전사령부 막사를 중심으로 언덕 곳곳에 병사들의 오두막이 호위하듯 둘러서있고 승전을 기념하는 개선문의 웅자가 계곡 전체를 아우르며 굽어보고 있다.



 그쯤에서 내 작은 어깨 감싸 안긴 채 듣게 될 격려의 음성들.

어떠한 역경이 닥친다 해도 비상구는 반드시 마련되어 있으니 끝까지 버텨야 한다고 말한다.

하늘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는 할지언정 무턱대고 속이지는 않는다고,

그러니 조금만 참고 견뎌 이 고비를 넘기라고 이른다.

내일은 틀림없이 웃는 날을 맞게 될 테니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말라고 다독인다.

어려움에 처해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거기 숨겨진 하늘의 뜻을 헤아려보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도 다시 그곳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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