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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5. 2024

승선교 지나 선암사에 매화 벙글었네

선암매


산천재 고매에 이어 매화 기행 두 번째, 홍매 백매가 일품인 선암매(仙巖梅)를 보러 갔다.


봄철 숱한 이들이 찾는 선암사仙岩寺) 경내에는 수령이 350~650년에 이르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50여 그루나 있다.


국내 4대 매화 중 하나인 '선암매'는 육백여 년 세월의 풍상을 견딘 장한 나무로 지난 2007년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됐다.


여러 매화 중 특히 고목이 된 채 껍질에 이끼가 낀 백매와 홍매 두 그루는 전지 솜씨 뛰어난 전아한 수형에 수세가 양호해 천연기념물로 관리된다.


각황전 담 옆에 핀 백매와 원통전 담장 뒤편에 핀 백매가 그것으로, 주말이라서인지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 운수암 오르는 길목이 꽤 북적거렸다.


매화를 완상하러 찾아온 꽃놀이패들로 겨우내 겹겹 고여있던 적요가 부산함에 밀려났다.


경내 곳곳에 진한 붉은빛 동백 뚝뚝 지고 있었으나 매화는 겨우 꽃봉오리 벙글며 꽃잎 하나둘 피어나는 나무도 있는가 하면 화들짝 만개한 매화나무도 있었다.


매화도 그렇고 선암사 역시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우리네 전통 미학을 공통적으로 지녔댈까.


선암사는 보물 400호인 승선교를 비롯 보물 제395호인 선암사 삼층석탑, 보물 제1311호인 선암사 대웅전 등 국가지정 문화재를 열두 점이나 품고 있는 고찰이다.


선암사 진입로에는 무지개다리인 승선교가 있는데, 이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다리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아치교로 유명하다.


공덕 중에서도 특히 지중하다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을 쌓은 호암 대사.


그가 세웠다는 승선교 중간 밑바닥을 눈여겨 살펴보면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기도 한 용머리 조각품이 보인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려 대기하고 있는 용이다.


뒤편으로 드러난 이층 누각인 강선루는 뜻 그대로 방금 전, 신령스러운 신선 한 분 천상에서 하강한 양 고고하다


유네스코 등재 축하 현수막이 출렁거리는 절 입구에는 산골나물을 펴놓고 파는 촌노 서넛이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왼쪽으로 계류가 흐르고 잡목 아래 산죽 빼곡히 들어찬 산길 거느리고 한 이십여 분 설렁설렁 걸어 올라갔다.



너르고 편편한 길가에는 부도탑이 열 지어 서있고 약간 경사진 언덕을 돌아서자 작은 연못이 보이며 아담한 일주문이 마주 선다.


작은 일주문 규모에 친근감이 들기도 하지만 높은 돌계단 위에 서 있어서인지 절집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고 의연스러운 일주문.


선암사에는 절마다 거의 다 있기에 당연히 있으려니 하고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두 가지가 없었다.


일주문에 한 발 들여놓자마자 양쪽에서 창을 꼬나들고 왕방울 같은 눈을 부릅뜬 채 서있는 사천왕상을 여기선 만날 수가 없다.


조계산 장군봉 아래 위치한 선암사이기에, 사천왕보다 더 위력 센 대장군이 정상에서 절을 지켜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유재란 당시 거의 모든 법당이 불에 타 중건된 외에도 여러 번 큰 불이 나 폐사 지경에 이를 정도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중창했다.


다시 여순반란사건과 한국동란 난리 통에 산속으로 숨어든 파르티잔들 피해도 많이 입은 선암사다.


이처럼 선암사는 유달리 화재가 잦아 여섯 차례나 중건을 했듯, 각별히 불씨를 조심해야 했기에 대웅전 앞에 아예 석등이 없다.


산속에 균형 있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람배치가 자연과 잘 어울리는 선암사.


좁은 계곡에 절이 들어서 있어 공간 활용도가 높으며 절제미가 유독 돋보이는 절이다.


예스러운 절 선암사는 처음에 지어진 대로 고친 데도 별로 없이 그냥 그대로라 더 운취롭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니 증개축도 자유로이 하지 못하므로 일월이 덧쌓일수록 낡고 빛바래져 점점 더 고풍스럽겠다.


선암사는 조계종(曹溪宗)이 아닌 대처승 종단인 태고종(太古宗) 본산이다.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는 이 절에서 태어났으니 부친이 승려이자 시조시인인 조종현 선사다.



자고로 해우소(解憂所)에 들러서 볼일을 안 보면 선암사를 본 것이 아니라는 말이 전해진다.


그만큼 선암사 뒷간은 선암사에서 꼭 둘러봐야 할 곳으로 크고 높기도 하지만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변소다.


뒷간 외벽이 살창으로 되어있어 볼일을 보면서 밖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지만, 아래 바닥까지의 공간이 족히 2미터는 되는지라 후덜덜 다리가 떨릴 정도로 깊어도 너무 깊다.


지방유형문화재 214호인 뒤깐, 단순히 오래됐다고 문화재로 지정될 리 만무다.


그만큼 해우소 정면 입구의 자연 그대로를 살린 부드러이 휘어진 나무 곡선이 명품이기 때문이다.


거기 취해서였던가.


시인 정호승은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 해우소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란 시구가 아마도 그래서 나왔으리라.


오래전 어느 해 여름 선암사에서 산행 삼아 송광사까지 걸어 넘어간 적이 있다.


조계산 산봉우리 하나 넘어서면 송광사가 6,5 km 그 아래 위치해 있기에, 한여름 무성히 풀숲 깊은 산길을 휘적휘적 걷다가


냇가로 내려가 세수도 하고 발도 담갔다.


지금도 그려지는 그 완만한 산세에 그 거리 정도의 산이라면 다시 한번 천천히 걸어보고 싶은 산길이기도 하다.


조계산 정기가 남다른지 송광사는 16 국사를 배출했는데 그동안 선암사는 묵묵히 불교의 뿌리를 튼튼하게 다져왔다던가.


선암사 매향에 고즈넉이 젖어있다가 아쉬움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박새인지 목탁새인지 낮은 새소리가 옆을 따랐다.


문득, 툭 툭 전지 잘된 고매처럼 사방 빼곡히 채워진 살림살이들로부터  벗어나 비움의 미학인 홀가분함을 제대로 껴보고 싶어졌다.


우선 스스로 자신만의 단순한 규율을 만들어 생활하며, 앉은뱅이책상이 전부인 단출한 방에서 살아볼 생각마저 들었다.


나무 선반에 이부자리 개켜 얹고 대나무 못에 옷가지 걸쳐두고 소찬에 만족하며 담박하게 살기.


수도승 같은 삶을 지금 아니면 언제 시도해 보랴.


한국에 돌아와 그렇게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로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리는 중.

*주소-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길 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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