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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ug 15. 2024

무지개와 함께 간 마라도

수차례 무지개와 만났다.

마라도행 뱃전 고물에서다.

파도 하얗게 부서지며 물이랑 일으켜 비말 튈 적마다 무지개가 떴다.

흩어지는 물보라에 무지개 홀연 피어났다가 스러지곤 했다.

갑판 난간 꽉 잡고서도 흔들흔들 뒤뚱대면서 아이들은 신이 나 환호 보내고 젊은이들은 사진 찍기 바빴다.

순간 확 튀어 오르는 바닷물 갑작스레 뒤집어쓰자 까악~비명 지르지만 갑판 쉽사리 떠나진 않았다.

멀어지는 제주 섬 저만치 한라산 우뚝 중심을 잡고 낯익은 정방산 자태 저리 선연하게 보일 줄이야.

출발지인 운진항 인근 자세히 살펴보면 동쪽에 파노라마로 뜬 범섬 문섬 섶섬도 가늠이 됐다.

나지막한 가파도를 지날 즈음 바다색 문득 검푸러져 주황색 구명조끼 숫자 헤아려지며 심청이 제물로 몸 던진 인당수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청남빛 굼실거리는 물결 바라만 봐도 눈길 시원해지고 멀리 수평선에 시선 던지노라면 폐부 후련히 트여왔다.

어느새 운항시간 25분이 지나 무척이나 멀게만 여겼던 마라도, 가파른 해안 절벽에 이어진 살레덕 선착장에 닿았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작은 섬에는 눗누런 억새가 해풍에 날리고 있었다.

망망대해에 외따로 뜬 섬이라 그런지, 서귀포에서는 나뭇잎조차 미동치 않았는데 마라도 바람은 시원함을 너머 차디찼다.


대한민국 영토의 끝이면서 시작인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마라도.

국가 천연기념물인 마라도는 절해고도로 조선시대 중죄인 유배지였던 제주섬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약 12m 떨어져 자리했다.

방어축제가 한창인 모슬포 남항 운진항에서 승선 신고서를 쓰고 신분증을 지참해야 탈 수 있는 마라도행 여객선을 탔다.

선실은 1,2층에 각각 배치돼 있었으며 갑판에도 긴 의자가 놓여있어서 바닷바람 쐬며 뱃전에 섰다.

물때가 조금이라 파도 잔잔했고 날씨는 청명했으며 하늘빛 기막히게 푸르렀다.

영화 빠삐용에서 본 수직 절벽 아찔하게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둘러싸인 해안선 실루엣은 장쾌했다.

해식동굴이 입 크게 벌린 기암절벽에 이어진 살레덕 선착장에서 언덕길 올라 등대 있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부분 오른쪽 길로 섬을 도는데 절벽이 있는 동쪽이 전망과 풍치 뛰어나 포토 스폿도 많다는 점, 팁으로 남긴다.

해안가에 식당이 줄지어 자리 잡은 그쪽보다는 등대와 최남단 기념비가 있는 데로 길을 잡으면 좋은 게 또 있다.

충분히 눈 호강 시켜가며 정경 멋진 데서 사진 찍은 다음 느긋하게 끝 식당인 자장면 집에 들면 자리가 넉넉하다.

서쪽으로 걷던 관광객들은 대부분 줄나래비 선 식당 중, 앞머리에 있는 집을 택하므로 끝에 집은 손님이 적게 마련.  

해서 다수와 반대로 돌아보는 것이 유리한 데다 마지막 집 해물 짜장은 면 즐기지 않는데도 맛 특별해 강추한다.

이름은 유념해두지 않았지만 맨 마지막 식당으로 문간에 고양이가 놀고 잘 생긴 개가 보초를 서는 민박 겸한 집이었다.

한두 시간이면 넉넉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섬이라 천천히 예쁜 성당과 소박한 교회, 해수관음이 선 절, 애기업개 할망당도 챙겨보았다.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차면 바다로 빠질듯한, 그러나 휴교로 문 닫힌 초등학교에서는 교문 밖 해시계 한참 구경했다.

누렇게 마른 잔디와 시꺼먼 현무암 바위 사이에 유독 싱싱하게 뿌리내린 방풍나물과 번행초라는 바닷가 식물도 첨 알았다.

돌아오는 뱃길은 오후라 파도 일어 롤링이  심했으나 그마저 호숩고 신바람 났다.

아참, 저 때 식당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도 사라졌겠군. 멸종위기종인 뿔쇠오리를 해친다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지난해 섬에서 몽땅 추방당한 고양이들.

그 바람에 극성스레 쥐떼가 번성, 음식을 축내고 해녀들 어망까지 쏠아먹는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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