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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판 Oct 21. 2024

실패로 끝난 메일링 서비스

작가로 데뷔하고 싶었지만 딱히 무언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쓴 소설도 형편없었고, 평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주변에서 에세이를 잘 쓴다고 이야기하고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끔 에세이를 썼다. 고등학생 때 공모전에서 에세이로 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소설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에 에세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블로그 이웃 중에 몇몇 사람은 작가나 평론가로 당장 데뷔할 게 아니라면 일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시작한 것이 메일링 서비스였다. 이슬아 작가 이후로 많은 작가와 작가지망생이 메일링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블로그 이웃 몇 명도 메일링 서비스를 운영했다.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플랫폼이나 폼을 통해 글을 보내면 된다. 이런 서비스의 특징은 작가와 독자의 친밀도를 높이는 데에 있다. 작가는 어떤 식으로든 미끼를 던지며 독자들을 유혹한다.


내 경우에는 그때까지 구독했던 메일링 서비스가 없었다. 어차피 양질의 글은 블로그만 봐도 충분했다. 무엇보다 글을 곧장 돈을 주고 판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정보일수록 오픈해야 한다는, 이른바 지식공유주의 성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오래된 고립 생활로 인해 매너리즘에 빠진 상황이었다.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세이로 메일링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 에세이를 쓰기로 한 것은 잘 쓰는 장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메일로 보내기에는 에세이가 잘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한 달에 여덟 편 이상을 보내는 것으로 목표로 하고 구독할 사람을 모집했다. 가격을 따로 책정하지는 않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무명작가의 글을 돈 주고 사서 읽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무료 구독자들을 받고, 계좌를 메일에 적어서 후원을 받으려고 했다. 이게 잘 되면 유료 서비스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몇몇 사람이 신청을 해주었고, 후원도 몇 차례 받았다. 후원 받은 금액은 메일링 서비스의 시세로 형성된 커피값 내외의 가격이었기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글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전달되어서 그것으로 용기가 생겼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메일링 서비스를 하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고립 생활이 길어지면서 부모님의 성화도 극에 달했고, 그에 대한 타협으로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일을 따라갔다. 그렇게 주간에 일을 하고, 저녁에는 글을 쓰는 일을 반복했다. 아무래도 일과 병행하다 보니 이전만큼 글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봐도 블로그에 올리는 글만도 못했다. 일이 끝나고 나서도 메일링 서비스를 했지만 이전만큼 구독자가 나오지 않았고, 스스로도 방향을 잃어버렸다.


메일링 서비스는 기획이 중요했다. 내 경우에는 주제를 중심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하루하루 있었던 일이나 단상을 바탕으로 글을 써서 보내고는 했다. 그러니 글마다 편차가 심했다. 그렇다고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일상을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아예 원고를 모으자고 생각하고 운영을 중단했다. 그 후 다음 해와 다다음 해에 시즌 2, 3로 각각 소설과 에세이를 보냈지만 흥하지는 못했다. 블로그를 보는 고정 독자가 줄어들면서 메일링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메일링 서비스는 처음으로 한 개인 프로젝트라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그전에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모임원으로 활동한 것이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메일링은 스스로 직접 기획을 하고, 사람들에게 유통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글을 읽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떤 글을 선호하는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기가 있는 글도 한 편 밖에 쓰지 못하면 지속하기가 어렵다. 작가로서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자신이 쓸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했다. 그때는 콘텐츠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서 메일링 서비스 이후로 꾸준히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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