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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Jun 02. 2023

퇴사 후: 나의 길을 찾아서

- 백수 경력 1년 차, 프리랜서 신입

현재 나는 백수다. 과거의 내가 3년 동안 열심히 모아준 돈으로 한량으로 살고 있는 중이다. 벌써 백수 경력 1년 차. 진로 찾는 적성에 백수도 넣어준다면 아마 내 적성은 백수일 것이다. 누가 백수 적성에 안 맞겠냐만 나는 ‘진짜’ 잘 맞는다. 오죽하면 친구들이 “너의 직무 역량이 어떤지 같이 일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백수가 제일 네 옷 같아”라고 말하며, 백수 유지 기금을 모금해 보라는 말도 들었다. 그럴까?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내 계좌번호를 적을까? 카카오페이로 보내줘도 된다고. 한 달에 만원. 가족, 친구, 지인들이 나를 살리는 셈 치면 괜찮은 제안 같기도 하다. 


나에게 백수가 가장 어울리는 이유는 다 다른 사람, 경로를 통해서 들은 말인데 신기하게도 비슷했다. 겉으로 보기에 불안해 보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란다. 듣는 당사자인 나도 절로 끄덕이게 되는 말이었다. 아예 불안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자기 전에 갑자기 막막해서 울어버렸던 적도 있다. 백수이기 때문에 불안했던 것은 맞지만 불안의 강도가 다른 모습으로 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시간부자라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공부하고 실천해 볼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고 싶은 일도 많이 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운동인 수영을 매일 다니고 있고, 좋아하는 뮤지컬의 넘버 메들리를 피아노로 치고 싶어 6개월간 학원에 다니며 연습도 했다. 마음껏 책을 읽고, 기록하며 독서모임도 다녔다. 미국도 다녀오고, 국내 여행도 꽤 다녔다. 수능 전부터 이별을 한 영어 공부도 시작했다. 


경제적 자유. 어쩌면 나는 과거의 내가 준 선물로 이뤘는지 모른다. 이렇게까지 달콤할 줄은 몰랐다. 경제적 자유 열풍이 불 때, 그 열풍 속에서 같이 선망하다가 초라해질 것 같아 마음을 접어버렸던 날들이 무색했다. 돈 있는 백수, 이거 정말 달달하다. 문제는 내가 돈 ‘많은’ 백수가 아니었던 점이다. 백수로 산지 1년, 통장이 가벼워지고 있다. 이제 나도 다시 노동 시장에 뛰어들 때가 온 것이다. 충분히 행복을 느끼고 있는 지금, 내 손으로 이 행복의 굴레를 끊어야 하다니, 잔인한 현실에 서럽기까지 하다. ‘이게 맞냐’라고 주변에 외쳐도 소용없다. 이제 현실과 타협할 때가 온 것을,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나 혼자 외면할 수 없었다. 


일반사무직 경력이 3년이 있으니 재취직이 쉬울 줄 알았다. 국내외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할지라도, 이 경력이면 바로 취직할 줄 알았다. 세상이 내게 ‘나 만만하게 보지 마라. 호락호락하지 않아’라고 외치고 싶었는지 줄줄이 불합격을 받았다. 그것도 서류 탈락. 요즘은 고용 공고 페이지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연령대와 경력, 자격증을 볼 수가 있어서 살펴보니,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순간 1년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돈 ‘많은’ 백수도 아니었으면서 한량처럼 살았던,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믿었던 해맑은 나를 원망했다. 


내 마음을 뜯고 할퀴는 시간을 보내고 진정이 된 후 구인구직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다시 차분하게 공고를 살폈다. 어떤 산업군에서 일을 해야 오래 일할 수 있을까? 아 직무가 먼저일까? 어떤 직무를 해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당연히 경력을 살려야겠지? 이 직무가 비전이 있나? 신입으로 들어가기엔 나이도 없고 이렇다 할 경험도 없지 않나? 여러 질문을 던지다가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에 멍해졌다. “내가 처음에 퇴사했던 이유가 뭐지?”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쉬면서 하고 싶은 것만 다하려고 퇴사한 건 아니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고, 그중에 하나는 다시 진로를 찾는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얻은 답은 프리랜서로 살기. 경력을 버리고 신입으로 살기로 했다. 유튜브나 포털사이트에 프리랜서로 사는 법을 검색해 보니 대체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걸어온 인생길을 보면, 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나의 길을 걸어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 기술을 배우면 되고, 아니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낼 나를 믿기로 했다. 


퇴사 전, 퇴사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봤을 때 다들 프리랜서로서 살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쉬면서 외주를 받으면서 돈을 조금씩은 벌었던 사람들.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저 ‘프리랜서’만 보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텐데, 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지? 순간, 나의 길을 공유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아쉽게도 지금 현재 이렇다 할 직업이 없지만, 분명 찾아낼 것이고 지금처럼 기록할 것이다. 미래의 나와 또 나의 글을 읽을 누군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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