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다스리기
타인에 비해 불안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질을 타고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불안이 나를 흔들기 시작하면 불안도 '이.. 이렇게까지?' 라며 무안해할 정도로 맥없이 흔들린다. 그러다보면 내가 품고 있던 희망들은 낙엽 떨어지듯 후두둑 다 떨어지고, 폭풍이 휩쓸고 간 흔적은 내 손톱에 고스란히 남는다. 정신 차리고 나면 너무 뜯어서 피가 나는 날도 있다. 친한 사람들은 내 손톱을 보고 내 안부를 묻는다. '요즘 뭐 힘든 일 있어?'
나의 이런 기질이 가장 두드러졌던 건 고등학교 때였다. 불안의 망령이 내 애착 망령이던 시절.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가지 않으면 내 인생이 끝날 것만 같다는, 사회가 만들고 내가 적극적으로 수용한 실체 없는 저주에 시달렸다. 적당한 불안은 삶에서 필요한 요소이고, 본인이 목표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몰두하는 시간은 인생의 값진 경험 중 하나이다. 하지만 난 그 불안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3년 동안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아 '지금 이 공부를 하는 게 맞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 과목은 지금 포기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공부방법은 이게 맞나? 이렇게 하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데 내가 시간을 낭비하는 건 아닐까?' 등의 질문을 던지며 나를 불안의 늪에 더 밀어 넣었다. 심지어 수능 전 마지막 모의모사 때는 시험에도 집중하지 못해 처음으로 언어와 외국어 시험시간이 부족했고 당연히 성적은 추락하듯 떨어졌다.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는데 나조차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대학생 때는 여러 이유로 성적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시험 일주일 전에 시작해서 밤도 새우지 않았고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했다. 그랬더니 학기당 7~8과목을 들어도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 불안을 잘 다스리기만 해도 머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마음속에 존재했던 불안을 완전히 다스리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고 대학생활 내내 잠잠했던 불안이라는 작은 불씨는 대학원 입시를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큰 불로 이어졌다.
불안에 시달리는 경험들을 겪고 나니, 퇴사를 준비할 때 돈만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내 멘털관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정체성의 부재는 또 바람이 되어 큰 불을 낼 테니 단단히 준비해야 했다. 먼저 블로그에 미래에 나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두었다. "불경기에 일 안 해도 될 만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취업이 비교적 잘 보장된 전문직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왜 퇴사를 한 거야?"라는 자책의 물음이 마피아 게임 중 밤을 맞이한 마피아처럼 고개를 들어 나를 지목할 것이 분명했다. 퇴사를 결심한 나는 의사가 되어 이 선택은 심사숙고하여 내린, 최선을 다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방법으로 미래의 나를 살려야 했다.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나에게 받는 응원은 큰 힘이 되었고 두더지 게임하듯 자책과 후회들을 망치로 퍽퍽 내려칠 수 있었다.
불안을 덜어낼 일상 루틴도 만들었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건 약속이 없으면 나가지 않고, 내 주특기인 침대에 누워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할 퇴사 후의 나였다. 일단 집 밖으로 나가는 루틴을 만들어야 했다. 우울감을 덜어내는 데도 효과적이라는 운동을 하기로 했다. 종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영. 우울은 수용성이라고 하니 물에 푹 빠져 운동을 하는 수영은 나의 우울을 녹여내기에 적절했고 수영장 가는 길에 광합성도 할 수 있었다. 가족들이 출근할 때 혼자 누워만 있으면 또 자괴감에 빠질 것 같아 아침 시간으로 등록했다. '나도 아침을 여는 어떤 행동을 한다 이 말이야'라고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가끔 늦잠을 자도 되는 백수의 특권을 누릴 때면, 꼭 씻고 집 앞 공원을 돌았다. 이것이야 말로 백수의 특권이다!라고 세상에 소리 없이 외치기 위해 점심시간을 제외한 근무시간에 나갔다. 참..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유치했고 또 치밀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없으면 내 손으로 내 이마에 무용지물이라고 낙인을 찍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여러 가지 활동들도 했다. 매일 30분씩 책 읽는 챌린지 참여하고 독서모임도 꾸준히 나가며 사람들과 만났다. 치고 싶던 피아노도 혼자 연습하는 것 말고, 학원으로 등록했다. 일종의 미션을 준 것이다.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당연하게도 내 인생이 망하는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없었고, 작은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빼앗기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그중 하나지만 그렇다고 혼자 고립되어 살아갈 수는 없다.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생각이 고이지 않고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더 만났다. 주로 독서모임에서 만났고, 운동하면서 만난 분들이 놀자고 하면 다른 때와 달리 흔쾌히 만났다. 다양하고 낯선 사람들을 만날 때는 정신적 피로도가 좀 더 높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 내가 만나보지 못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듣고 대화를 나눴다. 다양한 인생들을 마주하는 것이 주는 안도감도 있달까. 내 인생이 어떤 모양이든 그냥 그 다양한 인생들 중에 하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달래주었다.
나름 단단히 준비를 했지만, 당연하게도 불안은 자주 찾아왔다. 그럴 때는 명상을 했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초보자도 따라할 수 있는 영상들이 많았다. 호흡에 집중하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생각들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 흘려보내주면 괜찮아졌다. 요즘에도 자주 찾아오지만 불안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퇴사 후 초반과는 다르다. 전에는 불안이 느껴지자마자 '아 인생 진짜 망했다 어떡하지?'부터 시작해 휩쓸렸다면, 요즘은 '또 파도가 치기 시작하는구나' 하면서 불안을 다스릴 방법을 차분하게 생각한다. 파도가 지나가면 다시 한번 살아갈 힘이 생긴다. 아래 영상은 내가 지금도 계속하는 초보자를 위한 명상이다. 유튜버분의 목소리가 듣기 좋아서 선택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Mp67fyi7qk
이 중에서 가장 추천하는 건 운동과 책 읽기다. 운동은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책임져주고, 책 읽기는 하루에 30분만 해도 엄청난 뿌듯함과 위로를 건네준다. 특히 책과 친하지 않았던 나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 그 자체로 뿜어내는 어쩐지 고상해 보이는 이미지 덕분에 자부심과 지적허영심까지도 채웠다. 실천이 어려운 만큼 혼자 하기 쉽지 않으므로 sns에서 책 읽는 습관 만들기 챌린지로 시작하면 좋다. 나 또한 퇴사 전에 잠깐 하다가 퇴사 후부터는 아직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책 읽기는 가벼운 느낌의 추천이라면, 운동은 의무의 느낌으로 추천이다. 무조건. 정말 무조건 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불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심지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뜬금없이 찾아왔다. 그렇게 자주 보는데도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은 적응되지 않는다. 결코 만만하지 않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허무할 정도로 문을 부수어서라도 찾아왔다. 그러니 퇴사를 고려할 때 여러 장치를 마련하길 바란다. 불안을 영원히 내쫓을 수도 없고, 또 필요할 때도 있으니 앞으로도 함께해야 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 불안을 잠시 다른 방에 재워두고 내 마음은 거실에서, 내 방에서 다시 생활하게 하면 인생은 또 살만해진다.
퇴사 후 불안 관리 하는 법 요약
1. 퇴사 전 퇴사하는 마음을 담아 퇴사 후의 나에게 편지를 쓸 것.
2. 운동하는 일상 루틴을 만들 것: 강제성이 필요할 수 있으니 강습이나 pt로 추천. 무조건 추천.
3. 여러 가지 활동하며 사람들 만나기 : 책 읽기, 독서모임, 배우는 취미활동
4. 명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