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소중한 당신 > 11월 원고
사회생활을 한 지 10년 차 정도 되었을 때다. 유난히 무기력했다. 방송 스케줄에 맞춰 자판기처럼 대본을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성당에서 봉사활동하는 것도 다 무의미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마음속 뭉근하게 오르는 뜨듯한 행복. 그 무언가가 없었다. 그때 본당 신부님께 처음으로 면담을 청했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신부님은
"인스타그램 하세요?" 물으셨다.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다가 겉멋이 잔뜩 들어가 있는 내 모습이 부질없게 느껴져 폐쇄했다는 내 말에
"제가 봤을 땐 자매님은 자매님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 같아요. 매일 한 가지씩 좋아하는 것을 찍어 올리세요. '보여주기'가 아닌 '자매님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세요."
이렇게 해서 다시 시작된 나의 SNS 미션은 높은 가을 하늘, 비 오는 토요일에 간 한산한 미술관, 향기가 좋아 알게 된 치자꽃 한 송이로 채워졌다. 자연스럽게 이렇게 좋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계절이구나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과 함께한 요리도 올렸다. 방송에서 본 메뉴를 메인과 보조 셰프가 되어 팀워크를 다진다. 요리가 완성되면 안주가 되고 말지만..
한 번은 국물 양 조절에 실패해 주말에 한 짬뽕을 삼일 내내 먹은 적도 있다. (당분간 중화요리는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만의 SNS 곳간은 하루 하나씩 행복이 쌓여가고 있었다. 멀리서 사는 탓에 자주 만나지 못하거나 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피드도 구경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공간에는 온통 부러운 소식뿐이었다.
근사한 취향을 담은 문화생활 인증샷, 마음먹고 가야 하는 해외여행, 승진, 건강한 출산과 같은 소식들을 접할 때면 부럽기도 하고 폭풍 같은 자아 인식도 행해졌다.
'결혼 전에는 일도 곧잘 하고, 공연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퇴근길에 새로운 취미 배우기가 내 낙이 었는데...'
꿈, 기회, 만남의 일정 부분은 포기했지만 온전한 포기를 할 만큼 난 대범하지 못했다. 부러움과 축하를 한껏 담아 댓글을 달면서 내 모습을 비춰보게 되었다. 깎여짐은 괴로웠지만 다행히 둥글어지니 편안한 점도 생겼다.
며칠 전 주문한 적도 없는 택배가 도착했다. 뜯어보니 노래방 기능이 있는 '마이크'였다.
"요즘 부쩍 우울해 보여서 가끔 시원하게 노래 부르라고.' 이 귀여운 마음에 한 곡조를 뽑아 보았다.
어디서 이런 글을 봤다.
"뛰는 것이 삶이라면 걷는 것도, 멈춰있는 것도 삶이다. 버스를 잡기 위해선 뛰어야 하고 길을 찾기 위해서 걸어야 하며, 들꽃을 보려거든 멈춰 서야 한다" 삶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좋고 나쁨으로 따질 수는 없다.
이왕 멈춰 선 거 호젓하게 보내자. 여기에서 꽃도 보고 달도 보자. 그런 넉넉한 마음이 들었다.
덕분에 나의 자리에서 나의 것으로 살아감이 한결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삶을 총총히 걷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기쁘게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