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엄마에게 화풀이 하기

by 알미

아기는 리프레시에 탁월하다. 잔뜩 찌푸린 울먹임과 기침을 반복하며 선잠을 잔 아기라도

아침이 오면 방긋. 놀랍도록 행복한 표정을 보여준다. 어느 포인트인지 모르지만 발음이 재밌는 의성어에도 까르르 웃는다. 어제는 과일가게 아저씨가 아장아장 귀여운 모습에 바나나 한 개를 주셨는데 수줍음 많은 아기가 가게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잠깐씩 ‘사랑 그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매일은 그렇게 사랑스럽지만은 않다.


작년 코로나 4단계 돌입으로 어린이집은 휴원에 들어갔다. 매일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보낼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그 길로 대전 친정집에 내려왔다.(뭘 고민하냐는 주변 엄마들의 응원에 힘입어) 아기는 신이 났다. 서울 집보다 넓고 낮은 층이라 원 없이 뛰어다닐 수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 더 머리카락이 하얀 할머니까지 계시니 아기는 아침마다 뛰어다니며 인사하기 바쁘다.

“왕함미(할머니) 안냐세여.”

“하비(할아버지) 다녀(오)세여.”


인사 소리가 들리면 난 느지막이 일어나 아이 밥을 먹이고 엄마가 해 준 아침밥을 먹는다.

삼시세끼 걱정이 없으니 엄마의 널찍한 파자마처럼 보드랍고 편안하다. 나에게 엄마가 있는 집이란 응급실 같은 거였다. 일에 치여 조용히 지쳐갈 때,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나는 무조건 대전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탔다. 고등학교 때 쓰던 방에서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찬이 없다고 투덜대며 엄마는 밑반찬이 가득한 밥상을 차려낸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어.”

엄마의 이 말이 그때는 심심한 감잣국 같아서 싫었는데 아이를 낳고 단순한 생활을 반복하는 지금 종종 떠오르는 말이다. 이 단순한 삶을 유지하려면 얼마나 큰 인내와 성실함이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으아아아앙”

꿀 같은 아기 낮잠시간은 요즘말로 순.삭(순식간에 사라지는)이다. 엄마가 옆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아기는 자지러지게 운다.

“때때! 때에 때!!!”

아무리 토닥여도 울음은 그치지 않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한참을 땀을 뻘뻘 흘리며 스무고개 하듯 묻고 또 물었다. (이럴 때 아기 번역기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끝까지 원하는 단어가 나오지 않자 제풀에 지친 아기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다가 한바탕 더 울었다.

한참 후에 “빨대!”라는 것을 알아차린 후 빨대를 쥐어줘도 빨대는 바로 내동댕이쳐졌다.


빨대를 주우며 ‘나도 엄마에게 이렇게 투정부리고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한다고 하는데, 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늦게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지 않는 다고 화를 내는 아기에게서 자꾸만 나를 보게 된다.

결국 빨대를 제깍 대령하지 못한 죄로 30분 정도 아이를 안고 서성이는 벌을 받았다. 벌이 라기에는 지독한 사랑이다. 나를 원망하기는커녕 내 목을 더 꽉 껴안고 내 가슴에 몸을 밀착하기에 화를 낼 수도 없다. 나는 꼼짝없이 촘촘하게 아기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저러다 허리 다 나가지. 너무 안아주지 마.”

엄마는 손녀가 예쁘지만 자기 딸이 더 눈에 밟힌다.

“엄마, 나도 이렇게 떼쓰고 그랬어?”

“너는 진짜 순했지. 커서는 너무 그래서 걱정이었어. 화가 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니까. 말을 해줘야 알지.”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어린 시절. 딸 많은 집에 셋째로 아래 남동생을 둔 나는 모든 것을 남동생에게 양보해야했고 그게 잘 하는 거다 배웠다. 연년생인 동생에게 엄마 품을 온전히 뺏겼는데도 할머니의 빈 젖을 물었다는 순둥이. 착한아이라는 칭찬에 갇혀 내 진짜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기를 낳고 더 아기가 되었다. 아이가 힘들게 할 때면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작고 힘없는 아기를 왜 그렇게 차별했는지 난데없이 따지고 분통을 터뜨렸다. 엄마는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반박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며칠 나 혼자 엄마와 냉전기를 보내다가 고등학교 때 등하교를 같이하던 반가운 친구를 만났다.


“너희 엄마가 냉정했다고? 무슨 소리야! 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엄마에게 서운한 일화를 둘둘 두루마기처럼 풀어내는데 친구가 내 말을 가로 막았다.

“난 아직도 기억나. 고2때였나? 너랑 엘리베이터를 막 탔는데 문이 닫히는 순간에 엄마가 뛰어나오셔서 너 입술 튼다고 손가락으로 막 뭘 발라주는 거야. 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르지? 와 쟤는 엄마한테 진짜 사랑받고 있구나 느껴져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엄마라면 왠지 그랬을 것 같다. 식구도 많고 큰집이라 명절, 행사때면 더 북적였던 우리 집. 난 혼자 있는 게 좋았다. 밀려오는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만 하고 혼자 구석에서 책을 봤다.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버릇없다고 혼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작은 다용도실 한편에 낡은 소파를 두고 읽지 않는 전집을 꽂아 두셨다. 내가 처음 가진 나만의 공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엄마의 사랑은 말 한마디가 아닌 더 깊고 커다란 마음이었다. 작은 아기를 어쩌지 못해 목 놓아 울 때면 엄마가 많이 생각난다.

나보다 10살 어렸던 엄마는 어떻게 했을까. 아기가 아프지 않고 하루를 보내면 ‘아 엄마가 이런 마음으로 매일 아침 묵주알을 돌리시는 구나.’ 엄마의 조용하고 꾸준한 사랑에 울컥하고 만다.


다시 서울에 올라온 지금, 덥다고 밥은 거르지 않는지 약은 잘 챙겨 먹었는지, 툴툴대지 말고 엄마에게 안부전화부터 해야겠다.


*<가톨릭 다이제스트> 2022. 8월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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