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의 경제학 - 경기 불황과 취업난
아버지께서는 면접 한 번만에 대기업으로 취직되셨다고 한다. 물론 건축공학도로서의 전문직 버프도 있었겠지만 요즘 세상에서 보면 비교적 "쉽게" 취직을 하신 셈이다. 아버지께서는 졸업도 하시기 전에 입사 결정이 나신 것이고 어찌 보면 요즘 청년들이 겪는 "취업난"을 경험하거나 "취준생" 타이틀을 달아본 적이 없으실 것이다.
최근 10년간의 뉴스를 보면 "일자리"라는 키워드와 "청년"이라는 키워드가 넘쳐난다. 그만큼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지난 20년간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경제가 안 좋아져서 일자리가 많이 없어졌어". 많이 듣는 소리지만 도대체 무슨 뜻일까. 경제가 안 좋아지면 왜 일자리가 없어지는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오늘은 "경제 불황"에 초점을 맞춰 보려고 한다.
불황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물건을 많이 팔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많이 팔지 않으면 물건을 많이 만들 필요도 없다. 물건이 많이 팔리지 않는 건 소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소비는 왜 줄어드는가? 내가 번 소득 중에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부분, 바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월급이 딱히 내려가지는 않았을 텐데 왜 소비가 줄은 것일까? 물가에 비해 월급이 안 올랐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을 임금상승률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가능성을 하나씩 파헤쳐 분석해 보자.
물가가 올라가는 이유에는 2가지의 큰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시장에 나온 물건 개수에 비해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을 때. 즉, 물건에 대한 수요가 공급보다 높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기업들은 물건을 더 비싸게 팔게 된다. 왜? 비싸게 팔아도 팔리니까. 똑같이 잘 팔리는데 버는 돈은 더 많으니까. 이런 일들이 시장에서 전체적으로 일어나려면 기본적으로 소비가 늘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물건이 잘 안 팔리는 불황속에서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올라갔다"라고 보기는 조금 어렵다.
두 번째, 물건을 더 비싸게 팔아서 수익을 높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물건이 비쌀수록 덜 팔리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물건을 더 비싸게 판다는 건 그만큼 물건이 잘 안 팔리기 때문일 거다. 왜? 처음에 얘기했던 대로다. 불황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생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경제는 빙글빙글 돈다. 물건이 안 팔리니 본전이라도 뽑으려면 물건을 비싸게라도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 논리가 물가상승률이 올라갔다는 설명에 있어 가장 설득력 있다. 하지만 요즘 물가가 다른 때 보다 비정상적으로 올라가고 있는가? 물가는 사실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만큼 대폭 오르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의 월급이 빠르게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회사들이 임금을 잘 올려주고 있지 않기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업계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말이다). 월급은 월급쟁이 입장에서는 수입(income)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cost)다. 기업은 왜 인건비를 줄이려고 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물건이 잘 안 팔리는 사회에서 판매 물건의 가격을 낮추는 것보다는 기업이 지출하는 비용을 줄이는 게 기업의 수익을 위한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인건비다. 인건비가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소비가 줄어들고 여기서부터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이게 우리 일자리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크게 관련 있다.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건 기업의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입사하면 할 줄 아는 게 무엇이 있겠는가. 누굴 뽑던 대졸자를 뽑으면 처음부터 다 가르쳐야 한다.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으니까. 차차 전문성을 키워 회사의 미래를 위해 장기 투자하는 건데 어찌 보면 신입 채용은 단기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좋지 않을 때에는 신입사원에 "투자"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회사가 돈도 별로 못 버는데 지금 이런데 투자할 여유가 어디 있나. 그렇다면 직원들을 줄어여야 하는데 과장 차장 부장 등 돈을 많이 받는 경력자들은 잘라버리면 그 일을 대체할 만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다시 찾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다른 살아남은 직원들이 그 업무를 넘겨받아 다시 익히기엔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아직 전문성도 부족하고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크게 손해 보지 않을 신입 또는 대리급들을 자르면 된다. 그리고 신입 채용 또한 대폭 줄인다. 직원들이 줄어든 만큼 남아있는 직원들의 업무량은 더 많아지고 야근은 필수가 된다.
아무리 그래도 말단 직원들을 다 잘라버리면 이제 기본적인 업무 집행은 누가 하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 해결책은 바로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비정규직"에 있다. 아무리 말단 직원들을 줄인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안정적으로 일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최소한의 직원들은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비정규직으로 뽑으면 된다. 적은 월급에 복지도 필요 없다. 하지만 필요할 때만 고용하고 필요 없어지면 쉽게 해고할 수 있다. 고용 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규직처럼 장기간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인력 보강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취업이 안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하나의 이유를 굳이 꼽자면 채용 자체가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갈수록 신입 채용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채용과 경력직 채용은 아직 꽤나 활발하다. 모든 것을 경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이 악순환이 오래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는 많은 기업들을 "비정규직에 의존하는 문화"에 적응하게 만들어 버린 게 아닐까.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잘못된 거냐고? 그건 정확하게 딱 꼬집어서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불황기와 호황기는 계속 있어 왔다. 경제는 돌고 돈다. 조만간 경기가 회복되면 청년들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