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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화 Jun 17. 2020

[영화로 배우는 인생 연출]_05.광해, 왕이 된 남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한 장면




이병헌이 이병헌과 연기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이병헌이 다 했다. 명품 조연들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그래도 이병헌은 이병헌이었다. 배우로서 매력을 맘껏 드러냈고 관객들은 다시 한번 이병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인 2역으로 '광해군'과 '하선'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광해군 역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하선 역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광해군 역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하선 역




영화 초반에는 근엄하고 카리스마 있는 광해군과 익살스럽고 인간미 넘치는 하선의 특징이 뚜렷하다. 표정이나 걸음걸이, 앉아 있는 자세, 같은 목소리로 내뱉는 다른 말투까지 단번에 역할이 구분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하선 역


그러다 영화가 후반부로 흘러가면 두 역할의 교집합이 생긴다. 분명히 하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광해군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뜨거운 물과 찬 물이 섞이는 순간처럼 묘하다. 특히 용상에 앉아 호통을 치던 모습에서 '누가 왕인가?'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중 하선 역


천민이 왕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우리가 원하는 왕은 어떤 사람일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왕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경쾌하고 재밌게 우화적으로 담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추창민 감독은 자신이 의도한 바를 '가르치려 들지 않고 유머를 통해 전달하는  역점을 뒀다' 밝혔다. 역시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 초목표(super objective)대로 영화의 장면이  만들어졌다. 물론 배우의 명연기 덕분이다.


감독이 영화의 초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어떤 장면을 찍을지 고민한다면 배우는 그 장면 안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 지 고민한다. 감독은 자신의 의도와 영화의 초목표를 결정한다면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의 목표를 결정한다. 어떻게 인물을 표현하고, 어떻게 말하고, 움직일지 설정하고 연기한다. 한 작품의 초목표를 실현하고, 자신의 역할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행위(action)가 곧 연기(acting)다.




배우들은 매 작품마다 다양한 역할을 맡지만 이병헌 배우처럼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역할을 맡기도 한다. 영화 <암살>의 전지현 배우도 극 중 쌍둥이 역할로 1인 2역을 연기했다. 한 작품 안에서도 두 인물을 연기해야 하고, 두 인물 각각의 역할 목표가 생긴다. 그리고 각 역할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좋은 연기라는 찬사를 받는다.


영화 <암살> 중 전지현의 1인 2역 장면


영화 <레전드>에서 배우 톰 하디 역시 쌍둥이 역할로 1인 2역을 연기했고,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의 누미 라파스는 일곱 쌍둥이 역할을 혼자 해냈다. 1인 7역이다.


영화 <레전드> 중 톰 하디의 1인 2역 장면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 중 한 장면


영화 <얼굴 도둑>의 마티유 카소비츠, 영화 <서스페리아>의 틸다 스윈튼은 관객이 쉽게 알아보기 힘든 분장을 하고 각각 1인 5역, 1인 3역을 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 <서스페리아>의 틸다 스윈튼은 남자 역할까지 해냈다. 얼굴 분장은 물론 정말 남자로 보이기 위해 가짜 성기까지 차고 연기했다고 한다.


영화 <얼굴 도둑>의 마티유 카소비츠
영화 <서스페리아>의 틸다 스윈튼
영화 <서스페리아>의 틸다 스윈튼


한 작품 안에서 한 명의 배우가 다양한 역할을 맡기로는 영화 <23 아이덴티티>가 단연 최고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무려 23개나 되는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배우는 작품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관객에게 정말 그 인물처럼 신뢰받기 위해 열연한다. 관객에게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이며 어떤 인물로 기억되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고민한다. 한 작품 안에서도 여러 역할로 변신하면서 관객들을 몰입시켜야 하는 경우는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 인생에서 맡은 역할로 변신하면서 역할과 관계한 사람들에게 신뢰받기 위해 노력한다. 어쩌면 인생은 NG가 나도 공연을 계속해야 하는 연극에 가깝다. 영화보다 연극과 더 비슷해서 무대를 옮겨가며 빠르게 다른 역할로 변신해야 한다.


‘퀵체인지(quick-change)’는 등장인물이 재빨리 변장하는 것을 일컫는다. 무대 전환 중에 재빨리 의상이나 소품 등을 바꿔서 다른 모습으로 입장할 때 이른바 퀵체인지를 한다. 무대 뒤에는 항상 의상을 갈아입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퀵체인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무대 가까이에 ‘퀵체인지 룸(quick-change room)’을 따로 만든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성공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세상’이라는 무대 위, ‘삶’이라는 작품에서도 퀵체인지를 한다. 학생들은 집에서 학교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일터로 무대를 옮긴다. 학교나 일터에서 다시 집으로, 때로는 친구를 만나러 시내 한 복판으로 이동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아빠나 엄마 역할로 하루를 시작했다가도 일할 때는 프로로 변신한다. 친구를 만나면 학창 시절 개구쟁이가 되기도 하고, 어른 앞에서는 의젓한 신사가 된다. 하루에도 서너 개의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역할을 맡고, 얼마나 많은 퀵체인지를 하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삶에서 맡은 여러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때그때 해당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삶’이라는 작품 안에서 이미 1인 다역을 열연하는 배우다.

- <인생 연출> 중에서 -


당신은 인생에서 어떤 역할들을 맡고 있는가? 역할 별로 당신이 원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하고 있는 걸까? 당신의 인생초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당신은 어떤 역할 목표를 향하고 있는가?


원하는 인생으로 연출하고 싶다면,
역할 목표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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