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다섯째 날, 허벅지까지 오는 물에 빠져 죽을 뻔

by 이태화

여섯째 날 쓴다. 어제는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아쉽게 끝났다.


래프팅을 위해 애써 눈을 떴다. 이동하는 동안 더 잘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맙소사! 이번엔 봉고차가 아니다. 썽태우다. 옆으로 앉아 가는 것도 그렇지만 제대로 기댈 곳이 없어서 불편했다. 아주 오랜만에, 정말 꼬마였던 시절 경험했던 멀미도 났다. 문득 조식을 먹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속이 매스껍고 약간 어지러웠다. 짧은 거리를 썽태우로 이동하는 건 재밌겠지만 장거리는 좀 아닌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옆에 있는 아내를 보았다. 나만큼이나 불편할 텐데, 나보다 잠도 많아서 엄청 자고 싶을 텐데, 아내는 말똥말똥 동그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말없이 같이 웃었다. 이런 멀미가 나는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아플 수도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맞은편에 앉은 외국인 가족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꼬마 아이 둘과 부부가 함께 탔다. 그리고 가족 셋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에 대해 생각했다. 저 사람도 엄청 불편하겠지?


래프팅 장소에 도착했다. 우린 영국에서 온 커플과 한 팀이 됐다. 래프팅을 하는 동안 내 뒤에 앉은 아내가 안 보이는 건 무척 아쉬웠다. 나중에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 해소되긴 했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원! 투! 원! 투! 선장의 구령에 맞춰 노를 저었다. 중간중간 급류 구간을 지날 땐 엄청 스릴 있었다. 아주 평온한 구간에서 카약을 타고 있는 가이드의 권유로 잠시 카약에 올라탔다. 처음에 흥분해서 엄청 노를 저어댔다. 그러다 한쪽으로 기울어 카약이 뒤집혔다. 래프팅을 하면서 한참 관찰한 바로는 노로 바닥을 짚고 뒤집으면 되는 거였는데 난 잘 되지 않았다. 카약에 점점 물이 차더니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노로 바닥을 짚고 뒤집는 시도도 소용없어졌다. 이쯤에서 날 구해줘야 할 것 같은데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이러다 잘못하면 죽겠다 싶어서 허우적 대는 순간 가이드가 와서 날 카약에서 빼줬다. 휴. 래프팅 체험하러 와서 죽을 뻔했다. 멀리 떨어져 있던 아내는 이런 급박한 상황을 못 봤나 보다. 난 이미 진정이 되고 웃음이 나오던 차에 다시 우리 보트에 올라탔다. 재밌었다고만 하기엔 조금 아찔한 경험이었다.


10킬로 동안의 래프팅이 끝났다. 식사로 주는 팟타이와 파인애플은 꿀맛이었다. 아내도 허기가 졌는지 오랜만에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잠시 쉬다가 다시 어딘가로 이동했다. 인터넷으로 얼핏 봤던 폭포 체험을 하러 가는 듯했다. 역시 스릴 있는 산길을 걸어 폭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저걸 폭포라고 하기엔 좀 어설픈 사이즈였지만 관상용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폭포 꼭대기로 올라가서 물줄기와 함께 바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체험이었다. 처음에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안전불감증으로 식겁하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위험해 보였다. 그런데 아까 썽태우에 같이 타고 온 네다섯 살로 보이는 꼬마가 하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올라갔다. 막상 미니 폭포 위에 앉으니 살짝 무서웠다. 내려갈 땐 팔을 엑스자로 해서 가슴에 붙여야지 생각했지만 어느새 폭포 아래로 떨어져 물에 빠져있었다. 짜릿했다. 아내도 생각이 바뀌었는지 하고 싶다고 했다. 다시 같이 올라갔다. 먼저 앉은 아내를 보고 파이팅을 외쳤지만 아마 아내도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다.


미니 폭포 체험을 마치고 산길을 내려왔다. 이제 모든 코스가 끝난 것 같았다. 옷을 갈아입고 씻을 시간을 줬지만 난 그냥 젖은 옷 그대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돌아오는 성태우는 아까와 많이 달랐다. 차 안의 분위기도 그렇고, 내 컨디션도 그랬다. 한참을 달려 숙소로 왔다. 들어가기 전에 허기 진 배를 똠양꿍으로 채우고 호텔로 들어왔다. 씻고 침대에 누워 쉬다가 배가 고파진 아내 덕분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우린 치앙마이 이태원쯤 되는 곳에서 피자를 사서 다시 호텔로 들어왔다. 어벤저스 엔드게임을 보면서 맥주와 와인을 마시고, 피자로 느끼해진 속을 신라면으로 달랬다. 술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어제는 그렇게 아쉽게 잠들었다.


아내가 말했다. ‘오리야 잠깐 눈 감아봐.’ 노를 젓지 않으면 보트가 나아가지 않는 평온한 구간이었다. 평화로웠다. 귀를 스치는 바람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조용한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눈을 감으면 작은 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느껴진다. 가끔은 잘 때 말고도 눈을 감을 줄 아는 여유를 갖고 싶다.


이전 10화아내의 다섯째 날, 물, 바람, 그리고 코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