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 10일

by 이태화

문득 2024년을 마무리하며 남겼던 글이 생각났다. 그렇지. 그래도 나름 한 해를 돌아보며 글을 썼었다.



그런데 2025년은 글로 남길 생각을 못했다. 11월 말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예상치 못했던 결정들을 해야 했다. 2025년 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5년 가까이 다녔던 직장을 마무리했다. 12월 31일, 41살에 다시 직장인이 되었던 회사에서 마지막 근무를 했다. 매일 신기록을 경신하던 근속일도 멈췄다. 2025년을 한 단어로 기억해야 한다면 '마무리'다.


마무리하려는 의도가 없던 일도 마무리 한 셈이 되었다. 임시로 맡았던 팀원들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며 기꺼이 나를 격려했다. 일하는 순간순간 강의 중에 떠들던 이론과 개념을 몸소 보여줘야 하는 시간이었다. 상장을 준비하면서 유의미한 일들도 함께 했으니 상장사의 면모를 갖춘 회사가 되면 마치 시즌 2가 시작되는 것 같겠다. 물론 시즌 2에는 출연하지 않는다.




인생을 축구 경기 시간에 비유했던 게 생각났다. 90분, 90세.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면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은 전반전 몇 분인가요? 나의 전반전이 끝났다. 인생의 전반전을 마무리했고, 40대 중반을 마무리했다. 이제 후반전이 시작된다. 물론 90세까지 못 살면 이미 반을 훌쩍 넘긴 나이다.


새해는 2026년만 떠오르지 않는다. 여생이 맴돈다. 살아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거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낀다. 해가 바뀌고 열흘 동안 죽음을 여러 번 생각하게 됐다. 장인 장모님의 아버지 묘지에 같이 가게 된 것도 우연이다. 수천 개라고 해야 할지 수만 개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무덤들을 볼 때마다 답답하다. 저 자리에 모두 누군가 누워있는 걸 상상하면 끔찍하다. 나도 돌아가신 엄마처럼 뿌려지고 싶다.


1월 10일.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이제 30년 인연이 되어버렸다. 30년이라니... 징글징글하다. 노래방에 가서 30년 전에 부르던 노래를 불렀다. 30년 전 미친 사춘기처럼 목이 쉬도록 웃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 모임이 끝나고 집에 올 때 이런 생각도 든다. 이제 이렇게 다 같이 볼 수 있는 건 몇 번쯤 될까? 꼭 죽어서가 아니라 사정이 생겨서 누군가 못 나오고, 한 두 명 빠지는 경우가 생기면 다 같이 보는 건 어렵다. 애쓰지 않으면 10번도 안 남았다고 본다.


오래전부터 읽고 싶던 책을 샀다. 직장인으로 사는 동안 진득하게 독서한 기억이 없다. 바빴다. 책을 읽는 것도 그랬다. 대충 넘기고, 목차만 보며 찾아 읽었다. 영화를 보면서 건너뛰기를 누르듯 책을 봤었다. 다시 한 장 한 장, 급할 거 없이 읽는 기분이 좋다. 버스 안에서, 지하철에 앉아서 읽는 것도 오랜만이다. 다음 편이 기대되는 드라마처럼 책을 본다. 설렌다. 이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5년 전, 다시 직장인이 되기 전에도 솔로프리너였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완전 다른 세상이다. 특히 솔로프리너가 할 수 있는 일들로 보면 딴판이다. 획기적, 혁신적이라는 말로 모자라다. 6개월 동안 SW 개발자를 찾아 헤매야 할 수 있던 일을 6시간 만에 했다. 5년 사이에 개발자들의 거품과 갑질과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개발자들은 아키텍처(architecture)라는 말을 쓴다. 건축에서 비롯된 용어다. 건축과를 나와서 개발자들이 건축 용어를 쓰는 걸 처음 봤을 때 흥미로웠다. 설계가 어쩌고 저쩌고 할 때도 그랬다. 3D 프린팅 기술로 집을 짓고, 모듈러 주택이 생기면서 인간에 의존하던 기술은 의미 없어졌듯이 결국 개발자들의 운명도 비슷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그 시기가 너무 빨리 온 것 같다.


AX는 기입 같은 조직만의 화두가 아니다. 개인도 AI와 함께 삶의 방식이 바뀌었고, 바뀔 것이다. 회사 밖으로 나와서 개인 사업에도 AI를 제대로 활용해보고 있다. 이제 사람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어서 편하다. 홀가분하다. 모든 일에는 작용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라 부작용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수개월은 더 이 후련함을 즐기고 싶다.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전혀 없는 일요일이다. 오히려 요일과 상관없이 언제든 일을 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을 때만 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 이거였다. 근로소득이여 잘 가라. 이제 다시 사업, 금융, 기타 소득의 삶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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