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31) 고맙습니다, 선생님

by 마하쌤
9788937810855.jpg

"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 (31)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 그림책은 저자인 패트리샤 폴라코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난독증에 걸려서 책을 읽지 못하는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던 조지 펠커 선생님에 대한 감사를 담은 책이다.



가족 모두가 책을 좋아하는 환경 속에서 자랐으나,

정작 자신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감,

자신을 지지해주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상실감,

엄마의 전근으로 인해 갑자기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오게 된 못마땅함,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해 주거나 도와주지 않는 선생님들,

'벙어리, 바보'라고 놀려대는 아이들의 괴롭힘으로 인해 주인공 트리샤는 나날이 시들어간다.


그럴 수록 혼자 멍때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자신이 잘하는 그림 그리기에만 더욱 몰두하지만,

그런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급기야는 애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입으로만 아는 척 따라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러니 선생님들조차 트리샤에게 진짜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더 어렵게 된다.


그야말로 악순환의 반복인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끈 것은, 트리샤를 너무도 괴롭히는 '에릭'이라는 아이의 존재다.

에릭은 아무 이유도 없이 트리샤를 싫어한다.

(이게 제일 힘든 거다. 싫어하는 이유라도 있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들은 그냥 무조건 다 싫어한다)


에릭은 학교 이곳저곳에서 트리샤를 기다리고 있다가,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얼굴을 바짝 들이밀면서 "두꺼비!"라고 부르고,

심지어는 다른 아이들을 시켜서 트리샤에게 "멍청이! 못난이!"라고 부르게 시킨다.

너무나 괴로워진 트리샤가 화장실 옆 계단 아래 빈 공간에 숨어있으면,

거기까지 따라와서 "두더지! 벙어리!"라고 부르면서 괴롭힌다.


한 마디로 최악,

트리샤에게 이보다 끔찍하고 괴로운 일은 없다.

에릭이 없어지지 않는 한, 트리샤가 행복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전혀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모든 일에는 반드시 양면성이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맞붙어있다.


트리샤에게 에릭이라는 존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에릭은 분명히 최악이다.

그러나 에릭은 트리샤에게 있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왜?

에릭이야말로 폴커 선생님이 트리샤에게 집중하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폴커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누가 자기에게 예쁜 짓을 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았고,

누가 똑똑하든, 누가 최고이든,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고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했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지지했으며,

친구들끼리 서로 놀리고 흉을 볼 때면 엄하게 혼을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커 선생님이 항상 트리샤의 옆에만 있을 순 없었다.

폴커 선생님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아이들은 너무 많다.

트리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일 순 있겠지만, 거기엔 언제나 현실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에릭이 너무도 심하게 트리샤를 괴롭히게 되면서,

드디어 폴케 선생님은 트리샤를 구하러 달려오게 된다.

그리고 그때 에릭의 괴롭힘 속에서 팔 속에 고개를 파묻고, 몸을 공처럼 둥글게 웅크린 채,

계단 밑에 숨어있는 트리샤를 보게 된다.

교실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척, 애들을 따라 읽을 수 있는 척 하던 트리샤가 아닌,

진짜 트리샤를 보게 된 것이다.


그 날 이후 트리샤는 폴케 선생님과 독서 지도 담당 선생님의 특별한 지도 속에서,

결국 난독증을 극복하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최악의 고통 속에서 최고의 행복을 만나게 된 것이다.



트리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에릭이 고맙다.


물론 그건 어쩌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 아니냐고,

에릭은 어쨌거나 없었으면 더 좋았을, 완전 나쁜 놈이지 않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최악의 순간이 최고의 순간으로 바뀌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번아웃이 되는 바람에 첫 번째 삶이 하루 아침에 끝나버리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지만,

결국 그것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고,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 싫어했던 사람이 오히려 나에겐 보물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적도 있었고,

반대로 내 생애 최고의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적도 있었다.



나는 그래서 삶이 재밌다.

항상 내가 보지 못하는 뒷면이 있다.

어느 것 하나 100% 좋기만 하거나, 100% 나쁘기만 한 것은 없다.

반드시 그 안에 좋은 요소와 나쁜 요소가 섞여 있다.


그래서 최악의 순간에 있을 때조차, 여기에 뭔가 나한테 좋은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드러날 것이다.

높은 곳에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고, 낮은 곳에 있으면 반드시 올라가는 게 우주의 원리다.

그 누구도 항상 높은 자리에, 항상 낮은 자리에 영원히 있을 순 없다.


출렁출렁, 넘실넘실, 오르락내리락,

쉼 없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생명이고 삶이다.

그게 삶의 재미다.


파도 위에 살고 있으면서도, 영원히, 가만히, 안정되게 있으려는 욕구를 품으면 늘 괴로울 수밖에 없다.

차라리 나는 서퍼가 되련다.

파도의 움직임을 따라 무릎을 굽혔다가, 몸을 낮췄다가, 똑바로 서면서,

그렇게 삶의 리듬을 타고 춤추고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림책에 나를 비춰보다" - (28) 한 입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