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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음 Mar 07. 2021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은 행복했을까?

----clara schumann, 1819-1896.

‘클라라 슈만’은 서양음악사 수업시간에 유일하게 이름을 들었던 적 있는 여성 작곡가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작곡을 했다는 사실을 최근까지도 몰랐다. 내가 수업시간에 들었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슈만과 브람스의 뮤즈로서의 클라라 슈만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성 작곡가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자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두 사람이 로베르토 슈만의 아내로 기억되는 클라라 슈만과 팰릭스 맨델스존의 누나로 명명된 파니 맨델스존이라는 걸 볼 때 1970년대 강렬한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난 지 5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성은 본인 자신으로서 인정받기는 힘든 건 아닌지 씁쓸하기만 하다.     


더구나 클라라 슈만은 로베르트 슈만이라는 이름 외에 클래식 음악계에서 단연 유명한 로맨스의 주인공이라는 이름이 하나 더 쫓아다닌다. 임신한 몸으로도 무대 위에 서는 것을 감행했고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의 최초 여성 교수직이라는 성과를 이뤄냈으며 관절염에 시달리면서도 노년에까지 피아노 연주를 놓지 않기 위해 애썼던 그녀가 후세에 그녀의 업적보다 그녀의 로맨스가 더 유명해졌다는 걸 알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클라라 슈만은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고 남편 로베르트 슈만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데 누구보다 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그녀에게서 그녀의 남편의 이름을 떼어놓고 그녀의 인생을 이야기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편의 이름이 그녀의 이름 뒤에 항상 따라붙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녀 자신보다 유명한 그녀의 로맨스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후세의 사람들이 과거의 작곡가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 중요한 요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만이 가진 특징을 찾고 서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그들의 인생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덧붙인다. 하지만 여성 작곡가에 대한 글을 보면 그 사람만이 가진 특징에 관한 연구가 현저하게 부족할 뿐 아니라 그녀들의 작품보다는 그녀들의 주변인과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진 경우가 허다하다. 주와 객이 바뀌었다.  

   

나는 여기서 클라라 슈만이라는 여성 작곡가의 업적에 최대한 집중하여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재능 있는 여성 음악가 클라라 슈만으로서 말이다.          


계획된 연주자.     


클라라 슈만은 소프라노이자 피아니스였던 어머니와 피아노 교사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1819년에 태어났다. 피아노 교사였던 클라라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그녀를 연주자로서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매우 엄격한 훈련을 시켰다.     


클라라의 부모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고 결국 그녀가 5살이 되기 전에 이혼을 선택한다. 클라라 어머니는 양육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클라라는 아버지 손에 의해 길러지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클라라는 철저한 아버지의 계획 아래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관현악 기법, 대위법, 푸가, 작곡 등 클라라가 음악가로서 성공할 때 필요한 과목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쳤으며 클라라의 재능을 널리기 위해 집에서 작은 연주회를 자주 열어 그녀의 음악가로서의 사회진출을 도왔다.     


클라라와 슈만의 만남은 클라라의 연주를 감명 깊게 들은 슈만이 클라라 아버지 비크의 문화생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그때 고작 9살의 소녀였던 클라라의 재능을 슈만도 알아본 것이었으리라.      


클라라가 성인이 되고 슈만이 클라라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될 무렵 클라라 아버지 비크는 이 둘의 사이가 깊어지는 것을 몹시 불편해했다고 한다. 클라라를 유명한 연주자로 키우려는 계획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던 비크는 여성이 결혼을 하면 연주자로서의 재능을 발휘 못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클라라와 슈만은 결혼하기 위에 비크와 법정에서 싸우기까지 하는 험난한 과정을 거쳤다.     


19세기의 결혼은 남성이 여성을 부양할 수 있다는 증거를 여성 부모에게 보이고 허락을 맡아야 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남성들은 안정한 직업이나 수입이 있어야 했고 여성들은 일종의 소유권처럼 아버지에게서 남편에게로 넘겨지는 상황이었다. 참고로 슈베르트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여 첫사랑과 결혼을 하지 못했다. 이 시기의 청춘남녀들의 결혼도 현시대의 청년들처럼 만만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클라라와 슈만은 재판에서 승리를 하여 1840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슈만이 클라라에게 가정에 헌신하고 연주와 창작활동을 줄이라는 권고를 한다. 클라라는 슈만과의 결혼 생활 중 10번의 임신 과정을 거쳐 아이를 여덟을 낳았고 그 과정 속에서 가정일에만 충실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음악에 대한 열정은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각성하게 된 것이다. 당시의 여성들은 임신을 하면 바깥출입에 많은 제약을 받았는데 클라라는 임신한 채로 무대에 오르며 자신의 영역을 지켜나갔다.      


클라라가 연주활동을 활발하게 하면 할수록 남편 슈만의 정신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고 자살 시도까지 이어진다. 슈만은 자살 시도를 한 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16년간의 결혼생활이 끝난 것이다.     


슈만이 죽은 후 가장이 된 클라라는 연주 활동을 더 활발히 하기 시작했고 많은 부를 쌓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며 프랑크 푸르트 최초 여성교수가 되었다. 클라라는 관객에게 인기가 있을만한 레퍼토리를 직접 구상하고 연주에 대한 홍보, 지출과 수입관리 등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했다. 현재로 말하면 일인 엔터테인먼트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녀는 숨을 거두기 두 달 전인 1986년 3월까지도 무대에 올라 연주를 했고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것을 꺼려했던 슈만의 작품을 그 대신 세상에 알렸으며 여러 작곡가의 곡을 스스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만큼의 많은 일을 해낸 음악가였다.     



로맨스 소설의 여주인공.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로맨스는 후세의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꽤 인기 있는 이야기이다. 예술적 감각을 타고났지만 심성이 연약한 남자와 9살에 만난 이 남성을 평생 사랑한 여자, 그리고 이 여인을 조용히 지키는 연하의 남성이라니. 이미 등장인물들부터 흥미롭다.    

 

클라라의 음악에서 슈만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그와 동행하며 음악으로 교감했고 슈만의 음악세계를 마음 깊이 존경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몇몇 작품은 과연 누가 작곡을 한 것인지 의문 일 정도의 유사점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정말 한 몸처럼 붙어 지낸 세월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여러 가지로 미스터리 한데 이는 클라라가 브람스에 대한 마음에 대해 크게 언급을 한 적이 없었으며 오랜 시간 서신을 주고받으면서도 매우 격식 있는 어조로 의견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젊은 브람스와 아이가 여덟인 미망인의 친밀함을 좋게 보는 시선이 없다는 것을 알정도로 자기 커리어에 애착이 강한 여인이었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현대에까지 인기 소재로 회자되는 건 클라라와 브람스가 자신들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미스터리 한 부분이 많아서 일 것이다. 브람스가 클라라가 죽은 지 1년도 채 안되어 세상을 떠남으로써 애절한 이들의 미스터리 한 로맨스가 끝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클라라가 그렇게 지키려고 애썼던 자신의 커리어보다 더 조명을 받는다.     


          

사랑받는 아내와 창작에 대한 열망 사이에서.   

       

클라라와 슈만의 음악에서 서로의 빼고 그들의 음악을 논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은 서로의 음악에 대해 깊게 관여했고 서로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라의 경우 결혼 전과 후에 그녀의 음악이 형식적으로나 성격적으로 많이 변화한 것을 볼 수 있다.      


클라라도 수많은 여성 작곡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품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히 남편 슈만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작곡 실력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한다. 클라라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혹독한 교육을 시켰고 그녀의 재능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그녀의 회고록에서 여성이 작곡을 해서 성취를 얻는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회의적인 진술을 찾아볼 수 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도 이러한 소극적인 경향이 드러나는데 주요 멜로디를 절대 침범하지 않는 반주라던가 시를 선택함에 있어서도 태양과 꽃의 대비를 보여주는 등에서 그 예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함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망으로 작곡 활동을 멈출 수가 없었고 음악을 작곡함으로써 자신감을 찾아갔다.     


이런 소극적인 모습을 극복하는 과정이 담긴 가곡이 있어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유쿤데에 의한 6개의 가곡> op.23 은 슈만이 오스트리아 시인 롤렛((Hermann Rollett)의 시를 보고 ‘음악적’인 시라고 말한 것을 듣고 클라라가 작곡을 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6곡의 전체에서 여전히 여성성은 소극적이고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으로 표현되고 남성성은 이와 반대로 표현되고 있지만 이 곡은 그녀의 기존 곡들과 달리 밝고 명랑한 부분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곡이다.     


실제로 클라라는 이 가곡을 작곡하고 작곡하는 것이야말로 큰 기쁨이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곡은 슈만과 결혼한 지 13년이 지난 1853년에 쓰인 곡이니 슈만의 그늘 아래서 작곡에 대한 열망과 자신의 재능에 대해 고민하던 그녀가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5) 6 Lieder aus "Jucunde" von Hermann Rollett, Op. 23: I. Was weinst du, Blümlein - YouTube


클라라 슈만을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스의 주인공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녀가 인생의 다른 한편에서 음악에 대한 열망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서양 음악사에서는 여전히 그녀를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만 다루고 있지만 그녀는 슈만보다 40여 년을 더 살며 죽기 직전까지도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고 연구했던 사람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을 훔쳐보며 나는 문득 그녀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당신은 "슈만과 브람스에게 사랑받는 여성으로서의 삶이 행복했나요?" 아니면 "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하며 부를 이루고 명예를 얻었던 음악가로서의 삶이 행복했나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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