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를 부자처럼 먹었다

귤밭 옥수수

by 무쌍

푹푹 내리쬐는 날씨처럼 옥수수가 찜솥에서 익어간다. 늦봄 제주에서 온 초당옥수수는 정말 설탕만큼 달았다. 그런데도 기다리는 인생 옥수수는 따로 있었다. 오래전 설악산 휴게소 노점 할머니가 파는 옥수수였다. 옥수수가 그렇게 쫀득하고 달콤하면서 포슬 거리는 맛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 맛을 재현하고 싶지만 옥수수 삶는 비법은 찾지 못했다. 뉴슈가를 넣으면 맛이 난다고 했지만, 그 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러다가 밥을 뜸 들이듯 옥수수 삶기에도 뜸 들이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속에 풍덩 잠긴 옥수수가 시원해보여 부럽다

찰옥수수 한 망을 사들고 왔다. 꺼번에 삶아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을 작정이었다. 중복이 지나니 날씨가 사납게도 덥다. 그런데 삶기 전 물속에 풍덩 잠긴 옥수수가 시원해 보이고 부러웠다. 겉껍질을 벗기고 옥수수를 씻는데 연한 속껍질을 감싼 모습을 보니 손이 멈칫거렸다. 겹겹이 껍질 속 마지막으로 남은 속껍질을 벗기려는데, 귤밭에 살던 7살 아이 떠올랐다.


귤밭 담 아래에 똑같이 생긴 잡초들이 한꺼번에 자랐다. 알고 보니 아빠가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 놓은 옥수수 모종이었다. 아빠는 어린 나에게 놀다가 밟지 말라며 신신당부하셨다. 눈이 큰 아빠가 눈에 힘을 주며 말을 하시니 옥수수 주변은 얼씬 안했다. 옥수수 모종 주변은 위험지역이 되었다. 그런데 옥수수는 순식간에 내키 보다 커져 밟을 일은 없었다. 멀리서도 담장을 지키는 허수아비처럼 한눈에 보였다.

기다리던 옥수수 수확 날이 되었다. 어린 나는 옥수수 열매를 따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옥수수를 하나씩 잡고 꺽으며 따야 했는데 줄기까지 꺾어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대신에 아빠가 옥수수를 따는 걸 구경했다. 어느새 마당에 옥수수가 산처럼 쌓였다. 옥수수 부자가 된 듯 신이 난 아빠 빈 자루에 수를 세며 따로 담으셨다. 그리고 큰 옥수수를 골라 껍질을 벗기고 속을 살펴보며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으셨다.

가만히 앉아있기가 심심해서 옥수수를 하나 들고 껍질을 벗겼다. 겹겹이 껍질에 꽁꽁 쌓인 옥수수 속이 궁금했다. 그런데 수염 달린 부근에 뭔가 하얗고 동그란 게 꿈틀꿈틀 움직였다. 흰색의 통통한 애벌레였다. 후후 불어 벌레를 떼어내고 남은 껍질을 더 아래로 벗져 내자 우르르 애벌레가 쏟아지며 슬리퍼를 신은 맨발에 떨어졌다. 너무 놀라 잡고 있던 옥수수를 냉동댕이 쳤다. 밭에 심은 옥수수는 벌레가 참 많았다. 겨진 껍질만큼 벌레들도 어마어마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옥수수 알갱이는 토실토실 맛이 좋았다.

큰 옥수수들은 가마솥에 삶아졌고, 작거나 알이 덜 찬 옥수수는 화로에 구워 먹었다. 아무리 먹어도 옥수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며칠을 더 먹었던 것 같다.


마트에서 산 옥수수는 귤 발 아빠의 옥수수에 비하면 깨끗한 옷을 입은 듯했다. 그런데도 껍질을 벗기는 손이 움찔하는 건 그때가 생각나 그런듯 했다. 혹시나 벌레가 있을까 봐 가슴을 졸이며 옥수수 껍질을 벗겼다. 런데 너무 깨끗한 옥수수가 실망스러웠다. 아무래도 그 애벌레가 보고 싶었나 보다.

다 삶아진 옥수수는 할머니의 맛을 재현하지 못했지만 맛이 좋았다. 쟁반에 차곡차곡 올려진 옥수수를 들고 가족들을 불렀다. 그리고 귤밭에 살던 아이가 된 듯 옥수수를 부자처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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