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홈페이지를 기웃거렸다. 이미 텃밭 신청을 마치고도 조바심이 났다. 추첨 날짜는 아직 멀었지만 다른 소식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텃밭 공고 안내를 보니 별다른 소식은 없고, 접수 완료로 문구만 변경되어 있었다.
괜히 내 신년 운세가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올해 횡재수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텃밭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욕심이지만 내게 또 한 번의 당첨 운이 와주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당첨이 되길 바라며 추첨 날짜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
한번 맛본 텃밭은 중독성이 있었다. 빈 흙을 보면 자꾸만 밭이 어른어른거렸다. 가까운 곳에 텃밭이 있는 아파트가 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면, 이 아파트로 이사 와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지난가을 텃밭에 잘 자란 배추가 내 밭 배추보다 커 보여서 부러웠던 기억이 났다. 봄 야생화를 찾아 나선 산책이었지만 그 텃밭이 궁금해졌다. 며칠 전에 봄까치꽃을 만나고 나선 꽃을 보지 못해서인지, 산책이 지루해지고 있었다. 다시 찾은 텃밭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멀리서 봐도 텃밭엔 지난해에 정리 안된 흔적이 보였다. 들깻잎 뿌리가 앙상하게 뽑힌 채 뒹굴고 있고, 겨울을 보내느라 잡초들도 사라져 초록의 기운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렇게 밭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얼핏 보긴엔 질경이 같았다. 잎 끝은 노랗긴 해도 생기가 느껴지는 초록 생명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시금치였다.
텃밭에 자라는 시금치 (2022.03.08)
밭주인은 언제 시금치 씨앗을 이렇게 잔뜩 심어두었을까? 그러고 보니 지난겨울 동안 비닐이 덮인 밭이 몇 개 있던 것이 떠올랐다. 정돈하지 않은 밭인가 싶었는데, 시금치를 키우고 있었나 보다. 늦가을에 뿌린 시금치가 겨울 내내 비닐을 덮어둔 밭에서 자란 모양이었다. 덮어 두었던 비닐들이 모두 정리된 것을 보니, 날이 풀리자 모두 걷어낸 듯했다.
서울 한복판에 남도의 섬초처럼 노지 시금치가 자라고 있었다. 초봄, 아직은 차가운 바람을 견디며 노지에서 자라는 모습이 놀라웠다. 총총총 줄을 잡고 올라온 시금치가 대견스러웠다. 게다가 시금치 잎 끝이 울긋불긋 노랗고 붉은색으로 물들어 단풍잎처럼 예쁘기만 했다. 여러 가지 색을 한 시금치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한 구경 하듯 한참을 서 있었다. 안쪽의 잎은 빈틈없이 겹겹이 초록 잎으로 채워져 건강해 보였다.
차가운 초봄을 맘껏 누리며크고 있는 노지 시금치였다. 텃밭 주인의 정성에 시금치는 화답을 하듯 텃밭을 빼곡하게 채웠다. 아마 남도의 해풍을 맞고 자란 섬초만큼이나 단맛이 듬뿍 들었을 것 같았다.
잘 자란 시금치 밭을 구경하다 보니, 방금 전까지 텃밭 때문에 조바심 내던 것도 잊어버렸다. 텃밭 고수들의 솜씨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초록 싱그러운 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타인의 텃밭을 기웃거리는 일도 내겐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전라남도에서 자라는 섬초와 막상막하의 노지 시금치를 서울에서 만나게 될 줄을 몰랐다.
텃밭에서 배우는 지혜는 자꾸만 늘어간다. 내가 일구는 텃밭이건 타인의 텃밭이건 밭은 주인의 수고를무시하지 않는 듯하다. 푸릇하게 올라온 시금치가 봄이 왔다고 먼저 환영해 주었다.
그런데 또 조바심이 들었다. 텃밭 구경을 실컷 했으니, 봄야생화들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