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을 사지 않는다. 정원은 없지만 날마다 꽃이 피는 화분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막 화장을 하고 향수 냄새를 좋아했던 시절엔 꽃을 사러 갈 때마다 기준은 하나였다. 꽃 봉오리가 많거나 꽃송이가 덜 펼쳐진 것이었다. 이유는 꽃을 오래 보고 싶어서지만 꽃송이가 피어나는 순서를 감상하고 싶었다. 비밀을 간직한 친구가 입을 꼭 다물고 언제 말을 해줄지 기다리듯 모든 이야기를 꼼꼼히 듣고 싶었다. 속이야기를 풀어내듯 감추어 놓은 꽃술을 보여주며 향긋한 숨을 내뱉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진작가는 매일 조금씩 시드는 장미꽃을 책 한 권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싱싱한 귤이 마르고 썩는 순서대로 찍어 작품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표현방식으로 가장 완벽한 순간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듯싶었다.
시간이 가르쳐주는 지혜는 금방 배우지 못하지만, 누구든 깨닫게 된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고, 천천히 세월을 받아들이는 법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나에게도 차례가 온 듯하다.
꽃다발이 갖고 싶던 건 축하받을 일을 고대했고, 인정받고 싶던 시절이었다. 분리수거하듯 필요 없는 욕심들이 제각각 다른 이유로 떨어져 나가고 마음이 홀가분해지기 시작하자 꽃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베란다로 나가 오늘의 꽃을 감상한다. 어제저녁 핀 분꽃은 벌써 꽃잎이 시들었고 작고 동그란 씨앗 꽃이 하나 피었다. 맹렬한 여름 태양이 사라지고 어렵게 한송이가 피는가 싶더니 봉선화는 또 덥수룩하게 새꽃이 달렸다.새로 핀 봉선화는 한여름보다 천천히 시들어간다. 나팔꽃은오늘 딱 한송이만큼 웃는다. 파란색 꽃잎은 새로 필 때마다 색감이 달라지고 꽃잎도 점점 넓어져간다. 모든 계절이 부지런한 사랑초 꽃은 별일 없다는 듯 창밖을 내려다본다.
하룻밤을 보내고 꽃들과 눈을 맞추며 나누는 아침인사는 잠을 깬 아이들과 나누는 인사만큼 소중하다. 특히 내가 신경을 쓰는 건 채소 꽃 들이다.
토마토꽃은 열매가 되었다(2022.09.12)
채소 꽃은 꽃송이가 피는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든 꽃이 열매가 되기까지가 길고 긴 인내심이 필요했다. 활짝 핀 토마토 꽃은 꽃잎이 왕관 같지만 시들한 꽃잎은 생머리처럼 차분하게 아래로 늘어졌다. 모든 꽃송이가 토마토가 되면 좋을 텐데, 열매가 될지 그냥 사라질지 알 수는 없다.
쉬지도 않고 토마토는 포토 송이처럼 꽃이 달렸지만 시들며 열매를 보여주지 않았다. 매번 실패를 하지만 내색하기는커녕 다시 새 줄기를 뻗어내며 꽃을 피운다. 그렇게 수없이 실패와 반복을 오가더니 마침내 소식을 전해주었다. 연둣빛 토마토 열매를 내밀어 주었으니 말이다. 오이는 한꺼번에 열 송이도 넘게 암꽃이 피었지만 겨우 한 개가 제대로 크고 있다. 채소 꽃은 포기를 모르나 보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꽃은 시도한다.
인생의 시도 중에 나는 몇 번이나 실패했을까? 결실이 된 것들을 무엇이었나? 채소 꽃의 매력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 깊게 슬퍼하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실패가 심한 타격을 주었는지, 기회가 되었는지 모호해졌기 때문이다. 내 것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 모두가 나이 듦에서 배우고 채소 꽃이 알려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