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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쌍 Mar 07. 2023

나는 해피 엔딩을 쓰고 싶었다

3년동안의 브런치

 주말 늦은 아침이었다. 사과조각을 나누어 먹고 아이들은 텔레비전 앞으로 남편과 나도 각자 자리에서 쉬고 있었다.

'팅' 경쾌하지만 무언가 충격을 가한 듯 단 한 번의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이 모두 들었던 소리는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 물건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반복되는 소리도 없었다. 줄이 끊어진 걸까? 얼마 전에 다시 걸어둔 빨랫줄을 봤지만 멀쩡했다.

그리고 점심 준비를 하러 주방에 갔다가 발견했다.


 혼자 쪼개진 접시였다. 천장에서 뭐가 떨진 것도 아니고, 오전에 사과를 먹고 치우지 않은 빈 접시가 두 동강이 나 있었다. 접시 끝에 T자 모양의 조각이 신기했지만 주변엔 어떤 것도 없는 텅 빈 식탁이었다.


 외마디 비명소리를 내듯 '띵'하고 쪼개진 모양이다. 막내가 의미심장하게 "접시가 혼자 깨졌어요."라고 했다. 그 접시 위에 있던 사과조각을 먹은 우리 모두 무사했지만, 접시가 쪼개진 일은 신기했다. 그릇이  떨어지거나 부딪쳐서 그런 게 아니어서 괜히 신경 쓰였다. 뭐가 쪼개진 걸까..


 내면엔 흐릿한 경계선이 있는 듯하다. 눈에 보일 듯 말듯한 경계를 세우고 그 선을 넘어가지 않으려고  뻣뻣하게 힘을 주고 말이다. 그런데 접시 조각을 보며 그 경계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다고 하지만, 한 몸에서 나온 가족인데, 혈육인데 망설이고 있었나 보다. 함께 지내던 시간은 이미 먼 과거에 있다.


 그에게 들었던 말을 곱씹어 생각하고 있었다.

잊히지 않는 말들을 다시 꺼내 보아도 그때가 살아나지 않는다. 감정이 들끓기도 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깨진 접시처럼 쪼개진 일이었다.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우수회원에 선정되었다며 대출권수가 10권으로 늘었다. 요즘 책을 많이 보긴 했다. 머릿속이 그만큼 복잡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독서가 해결해 줘서 고마운 시간이었다.


 한동안 글을 쓴다고 글을 읽지 않은 날이 많았다. 시간을 어떻게든 보태고 싶었다. 글쓰기에만 말이다. 내 글만 읽던 시간이었다. 관심을 끌고 시장성이 높은 글을 아니지만 누군가 봐주길 기다리면서 쓴 기간이 3년이 되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였다.  브런치에 종종 그런 소회를 쓴 글들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그런 마음을 털어놓는 날을 상상해 보았다. 우물쭈물하다가 못할까 봐 시작한 일이 어느덧 그렇게 흘러갔다. 흐릿한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잠깐씩 세상이 환하게 웃어주기도 했다. 


 아침에 릿했던 하늘이 파랗게 변했다. 조각난 접시를 내다 버리고 꽃을 보러 나가야겠다. 꼼짝하지 않고 버티고 있기가 어렵다. 제 맡았던 매화향기가 잘 있는지 궁금하다.


소설 속의 엔딩처럼 뜻밖에 선물이 받고 싶다. 넓은 들판에 뿌려두었던 씨앗이 싹으로 돋아나 나무가 되고 꽃이 피는 상상을 자주 한다. 나무로 자라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꽃이 피는 고통도 필요하지 않는가.

 시간은 좀 걸리지만 풍요로움을 한꺼번에 받는 걸 꿈꾸고 있다. 당장은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그날을 위한 물 주기를 하듯 같은 일을 반복하며 하루를 버틴다.

끊어진 과거도 조각난 접시와 함께 버려야겠다.

 끙끙 버티다가 혼자서 깨진 접시처럼, 어딘가 숨겨둔 상처를 스스로 잘라내야 한다는 걸 이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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